[첫화면으로]Diary/2003-09-23

마지막으로 [b]

/2003-09-23

장애인과 컴공과 수업 두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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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19일날 일기에 적었듯이, 울톨릭후배의 부탁으로 오늘 오전 11시경에 학내 우체국 옆에 있는 "장애 학생 지원 센터"라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공대 쪽에서만 살다보니 이런 곳이 생겼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네요. 늦은 감이 있지만 참 기뻤습니다.

안에 들어가니 인터뷰를 부탁한 후배는 다른 일 때문에 없고, 인터뷰를 할, 센터에 근무하는 분과 전기공학부 쪽 입장에서 인터뷰 당할(?) 또 한 명이 있더군요. 전기공학부 쪽에서 나온 사람 역시 울톨릭후배였습니다. 이 친구에게도 인터뷰를 부탁할 예정이라고 하길래 제가 같은 시간에 하게 해달라 부탁했었거든요. (제 홈에 울톨릭 친구들이 얼마나 찾아오는지 모르겠지만, 궁금해할까봐 이름을 언급하면 처음에 부탁 전화를 한 친구는 재은, 오늘 같이 인터뷰하러 나온 전기공학부 친구는 95영준)

간단한 인사를 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는데... 사실 저나 영준이나 일단 스스로가 비장애인이니 직접 몸으로 체감할 수는 없고, 평소에 깊이 생각해 본 문제가 아니다보니 딱 부러지게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세 명이서 이런 저런 케이스를 예로 들어가면서 얘기하다보니 대충 다음과 같이 결론이 나더군요.

  • 순수하게 이론적인 부분이나 컴공의 알고리즘 같은 분야라면, 수학이나 이론물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애인도 충분히 할 수 있다.
  • 회로실험 같이 정교한 손놀림을 요하는 실험의 경우는 수행에 지장이 있겠지만, 이런 실험 같은 경우는 주로 조별로 수행하기 때문에 조원의 협조가 있으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고, 이런 실험들은 어차피 강의의 내용을 보조해 주는 역할이기 때문에 실험을 하지 못한다 하여 관련 분야의 학문을 전혀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외과의 지망생이 해부를 전혀 하지 못하거나, 미대 학생이 앞을 볼 수 없는 경우와는 다르다.
  • 컴퓨터, 전기전자 쪽에서는 학교의 충분한 지원과 시설의 편의만 제공된다면 결국 못할 것이 없다. 이때의 충분한 지원,시설이라 함은 교재의 점자출판, 장애인용 PC, 청각장애인을 위한 대필, 강의실까지의 이동권 보장 등등을 포괄한다.

이렇게 따지면, 뭐 다른 과라 해도 예체능계만 아니라면 다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라는 말도 나왔는데,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더군요. 저희보다 앞서서 기계, 항공 쪽 학생들과 얘기를 했을 때는 기계를 직접 조작하기 힘든 시각 장애 또는 지체 부자유의 경우에는 상당히 부정적이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남이 대신 들어주고 점자로 해주고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실습들을 할 수 없으면 곤란하다는 것이죠.

아무래도 저나 영준 군이.. 출신 동아리도 동아리고 평소 관점이 그런 쪽(어느 쪽인지는..)이라서 그런지 너무 낙관적으로 대답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더군요.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는 '충분한 지원'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무책임하게 '할 수 있다'쪽으로 얘기를 끌고 간 게 아닌가 싶어서 겁이 덜컥 났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계신 분 말씀이 올해 타대학에서 컴퓨터 공학부를 졸업한 시각 장애인이 우리 학교 대학원 입학을 위해서 상담을 하러 왔었답니다. 이미 학부를 마쳤고 대학원까지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실제로 있다니, 무모한 낙관이었던 것은 아니로구나 싶어서 안도했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학생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더군요. :-)


인터뷰라고 했습니다만, 오히려 저희가 더 많이 듣고 왔습니다. 학교 안에 장애 학생이 60명 가량 있고, 그 중에는 학부 때 교내에서 오토바이와 부딪히는 사고를 당해서 장애인이 된 사람도 있다더군요. (인터뷰 담당자 분은 학내에서 절대 외부 식당에 음식을 주문해 먹지 않는댔습니다. 한참 붐비는 시간에 빠르게 달리는 오토바이들이 너무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요. 저도 앞으로는 자제해야겠습니다) 장애 학생을 위한 시설은 연세대가 꽤 잘 되어 있다더군요. 무엇보다도 서울대학교는 학교가 산에 있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 불편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장애 학생 전용 셔틀이 순환도로를 돌기는 하는데, 공대 쪽에 가면 도로가 경사가 져서 셔틀 버스가 정차해도 휠체어를 내릴 수가 없다네요. 주차장에 들어가서 세우면 이번에는 올라가기가 힘들고...

인문대 쪽이랬나... 멀티미디어 강의동이 새로 생겼답니다. 얼마 전에 완공했는데... 바로 옆 건물에서 그 강의동까지 가는데 걸어서 1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휠체어를 타면 건물에서 나와서, 차를 타서, 순환도로로 나가서 멀티미디어 강의동 앞으로 간 후, 차에서 내려서 들어가야 합니다. 구름다리 하나를 만들었으면 되었을 것을... 강의동 안에 들어가면 강의실 안의 경사는 계단으로만 되어 있고, 휠체어용 자리가 있긴 한데 거기에 앉아서 칠판을 보려면 고개를 위로 처들어야 하는 거죠. 목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든 사람도 있는데 말입니다. 부모님이 같이 들어왔다가 서러워서 울고 가셨다네요. 10년전에 지은 건물도 아니고, 몇 달 전에 '유니버설 디자인' 운운하며 완공되었다는 건물도 결국 '학생 = 두 손 두 발 멀쩡한 사람'이라는 관념을 벗어나지 못한 거죠. 최근에 학교 안 곳곳에서 건물 앞에 휠체어를 위한 경사로를 만드는 모습이 보이던데, (이것만으로도 그나마 다행이긴 합니다만) 막상 건물 안에 들어가면 엘리베이터가 없어 결국 업혀서 올라가야 하고, 화장실이 있지만 입구가 좁아서 들어가지 못하고, 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칸의 문을 열 수가 없어서 결국 이용할 수가 없는 곳도 있다 합니다. 결국 생색만 내는 셈이죠.

가장 힘든 것은, 학교 밖에서도 그렇지만, 결국 사람들입니다. 학생회관 식당이나 도서관에 장애 학생 지정석을 만들면 '왜 소수 때문에 다수가 불편을 겪어야 하느냐' '그럴 돈이 있으면 다수를 위한 곳에 써라'등의 반응이 꼭 나온다네요. 그런 반응이 없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들으니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보험에 가입하고 평생 아무 탈 없이 살다 죽으면 결국 보험료는 거저 바친 셈이 되지만, 누구도 그것에 불만을 가지지 않지요. 지금 내가 장애인을 위한 배려에 협력한다면, 어느 순간 내가 그 배려를 필요로 하는 처지가 되었을 때 당당하고 당연하게 받을 수 있을 텐데요.

그리고, 예전부터 긴가민가 했던 건데 오늘 다시 얘기를 하면서 확인했습니다만, 장애인을 위한 시설 중에 "장애인만" 쓰도록 되어 있는 것은 장애인 전용 주차장 뿐입니다. 엘리베이터, 장애인용 화장실칸, 이런 것들은 어차피 현재 쓰는 사람이 없는데 일부러 비워 둘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냥 쓰시면 됩니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은 곧 어린이나 노약자를 위한 시설이고, 우리 같은 젊은 비장애인들에게도 편리한 시설이 되는 겁니다. 괜히 화장실 칸 하나 줄어들었다고 투덜대는 사람 있으면 한 대 쥐어박고 설명해 줍시다. :-)

(예전에 신문의 독자투고란에 "전철역에 있는 장애인역 엘리베이터를 아주머니들이 꺼리낌없이 타더라.. 그러지 말자.." 는 내용의 투고가 있었는데, 악의는 없었으되 아주 잘못된 주장인 셈이지요.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나에게는 아무 필요없이 세금만 축내는 것이다..라는 인상을 주게 됩니다)

아무래도 주제가 주제인지라 씁쓸하고 안타까운 얘기가 많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던 자리였습니다. 일단 이런 센터가 학내 기관으로 생겼다는 사실이 기쁘고, 여기와 협조하면서 자원봉사하는 단체들과 봉사 장학생들 (이동시 동행, 대필 등등을 해 준다 합니다) 의 모습이 기쁘고, 거기에 몸담아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후배 재은의 모습이 기쁘고, 센터 안에 있는 PC 들의 신기한 모습이 기쁘고, (모니터의 내용을 음성 출력, 엄청난 화면 확대 등 신기한게 많았습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학생회관 안에 있는 식당을 거쳐 매점에 잠시 들렀는데 식당 입구 바로 옆에 있던 장애 학생 지정 좌석이 기쁘고, 그 붐비는 점심 시간에 그 좌석들을 비워 둔 채로 잔디밭에 앉아 밥을 먹는 학생들의 모습이 기뻤습니다.
관련 링크 :
웬 '스마트'?

어제(23일) 쓰려다가 졸려서 관뒀던 건데... 학생회관 쪽에 간 김에, 반팔 면티를 사려고 기념품부 매장에 갔습니다. 일교차가 심해지니 반팔을 입기도 긴팔을 입기도 너무 애매해서, 반팔티에 남방을 걸쳐서 입었다 벗었다 하면서 지내려고 했는데 집에 있는 면티는 작년부터 잠옷 겸용으로 막 입다 보니 도저히 밖에 입고 나올 꼴이 아니더군요. 학교 매장에서 사면 시장이나 상가에서 사는 것보다는 비싸겠지만 따로 옷사러 나가기도 귀찮아서 그냥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러 갔지요.

근데 학교에서 파는 옷의 가장 큰 문제는 곳곳에 떡하니 "SNU" 라고 박혀 있다는 겁니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자기 학교 말하는 것을 좀 껄끄러워하는터라, (요즘은 아니려나..) 저 역시 그걸 가장 걱정하면서 갔습니다. 갔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티셔츠, 후드, 남방 할 것 없이 죄다 큼지막하게 로고가 박혀 있는데, 대문자 SNU 사이에 소문자로 풀어쓴 내용이 글쎄..

"Smart, Nice, Unique" ...

-_-;;; 그냥 Seoul National University 라고 적은 게 차라리 낫지 싶어서 뒤졌는데 그런 건 또 안 보이더군요. 결국 딱 한 종류 있던, 왼쪽 가슴에 자그맣게 SNU (역시 그 아래에 더 작게 smart .. 가 적혀 있었지만) 라고만 적힌 것을 사 왔습니다.

  • HaraWish : 조금 다른 얘기일 수도 있겠는데, 요새 기숙사 식당 쪽에 갈일이 종종 있는데, 그 쪽 매점과 스낵 코너가 싹 바뀌었더군요. 깔끔하게 바뀌긴 했는데, 쓰레기통이 너무 높아졌어요. 청결을 위해 그렇게 높이 만들어둔건지 모르겠는데(높이가 1m는 되지 싶습니다.) 제가 사용하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장애인이라던가 어린아이들같은 경우는 제대로 쓰기가 어렵겠던데요. 순간 '장애인은 분리수거도 하지 말라는 거냐.'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죠. (그나저나 일기 개근이네요. 이런 거에 맛들이면 안 되는데. ^^;;) - 2003-9-24 2:00 am
  • HaraWish : 이 쪽은 수정 안 되죠? 맨끝의 괄호 속에 들어가 있는 말은 제가 코멘트를 개근했다는 말이고 제가 코멘트 달기에 맛들였단 말입니다. 혹여나 오해없으시길. 글 즐겁게 보고 있어요. :) - 2003-9-24 2:01 am
  • Raymundo : 오해하지 않았고요, 아주 바람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개근상이라도 드려야 할 텐데... ^^ 그리고 로그인하면 수정도 가능합니다. :-) - 2003-9-24 7:44 am
  • Raymundo : 그리고 저도 거의 매일 점심은 기숙사에서 먹는 편인데... 매점에 새로 생긴 코너는 보기만 하고 이용은 못 해봤군요. 제가 1학년때는 저녁 5시 이후에는 하나 있던 매점마저 문을 닫아서 기숙사생들은 쫄쫄 굶으며 밤을 지샜는데... 요즘은 너무 좋아진 것 같아요.. :-) - 2003-9-24 7:46 am
  • zehn02 : 다른 건물은 모르겠지만, 사범대 입구에 장애인용 언덕이 계단 옆에 생긴게 5년이나 되었을까요? 안그래도 급경사에 장애우들에게는 정말 최악입니다. 그나마도 건물 앞에만 생기면 뭐하나요.. 다른 언덕들이 급경사라 너무 위험할텐데.. - 2003-9-24 3:08 pm
  • zehn02 : HaraWish님// 제 일기는 아니지만 일기 개근 좋아요.. ^^;; 주인장이 바라는 것이랍니다. - 2003-9-24 3:10 pm
  • zehn02 : 스마트, 나이스, 유니크// 공대생을 단무지라고 하면서 단순무식X랄.. 이라고 놀릴때, 단정무드지성.. 이라고 반박하는게 더 귀엽군요.. (사실.. 저는 단순무식X랄 이 더 귀여워요. - 2003-9-26 3:1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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