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화면으로]Diary/2003-09-16

마지막으로 [b]

/2003-09-16

동아리 탈퇴하려면 엉덩이 100대

횡설수설에도 적었습니다만, [여기]를 보니 참 씁쓸하군요. 무슨 폭력조직도 아니고... 맞기 싫다는 것을 억지로 때리지는 않는 모양이니 어디 가서 하소연하기도 힘들겠군요.

이런 걸 볼 때마다 제가 다니던 중, 고등학교 생각이 납니다. 고등학교가 특히...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제주도에 있는 고등학교들이 (다른 지역은 모르겠고) 군사문화라 부를 만한 것들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전체 조회를 운동장에서 할 때의 순서를 보면...

  • 교장선생님 입장 - 교악대의 장엄한 반주
  • 교장선생님께 경례 (거수경례로 '오현'이라 외쳤습니다) - 교악대 반주
  • 국기&교기 입장 - 교악대 애국가 연주 -
  • 국기에 대한 경례
  • 교장선생님 훈시 (훈시 전에 훈련부장이 교장선생님께 경례 후 "훈시" 복창. 훈시 후에 또 경례 하고 "훈시 끝" 복창)
  • 기타 공지 사항을 교련 선생님이 중얼중얼..
  • 교장선생님께 경례
  • 교장선생님 퇴장
  • 반 별로 줄을 지어 교실로 들어감
군대 갔다 오신 분들 보시면 완전히 붕어빵이죠? 교장선생님 자리에 대대장을 넣으면 완전히 똑같습니다. 국기보다도 교장에게 먼저 경례를 하는 것까지.

말이 난 김에, 도내에서 일년에 여러 번 고교 축구 대회가 열리는데 (제일 유명한 것은 제주신문사가 주최하는 백호기 대회) 이 때의 응원이 장난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말로 하거나 기껏해야 사진을 보여줄수밖에 없었는데, 요즘은 학교 홈페이지에 동영상이 올라와 있군요. 제가 다니던 오현고등학교 홈페이지의 [동영상자료실]입니다. 1번 동영상을 보면 상대 학교 응원단도 나란히 있군요. (창을 크게 만들어야 목록 다음 페이지로 가는 버튼이 보입니다) 그리고 예전에 인터넷에 많이 돌아다니기도 했던.. 대기고등학교의 응원 동영상입니다. [2001년 백호기], [2002년 백호기]. 2001년도 것은 예전에 다른 곳에서 봤었는데 "인간인가 전광판인가" "중간에 불량화소가 보이는 ^^; 전광판이 맞다" 등등의 리플을 보며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다닐 때는 저런 애니메이션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그 사이에 참 발전했네요.

뭐 한달씩 연습하지 않았겠느냐고들 하던데, 그렇게 오래 연습하지는 않습니다. 저희도 공부해야죠.. ^^; 제가 있을 때는 한 3~4일 정도, 수업을 조금씩 단축하고 오후에 두시간 정도씩 했었습니다. 그정도 가지고도 저렇게 고품질(?)의 영상을 보일 수 있는 이유는... 일단 우리 스스로가 저 응원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학교에 뒤지면 안 된다는 경쟁심도 충만했고, 행여 중간에 혼자서 버벅대고 있으면 양 옆에서 (세로로 1학년 한 줄, 2학년 한 줄, 3학년 한 줄... 순으로 자리를 지정합니다) 주먹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죠.

서울와서 친구들과 학교 얘기를 할 때 친구들이 가장 놀랐던 것은.. 공식적인 "선배 교육" 시간이 있었다는 겁니다. 한 학기에 한 번 날을 잡아서, 학생회 간부들이 반마다 몇 명씩 들어옵니다. 반장이 보고를 합니다. ("총원 몇 명, 사고 몇 명, 어쩌구 저쩌구, 현재 몇 명 교육 준비 끝") 학생들은 의자에 빳빳하게 앉아 있고, 간부들이 옆을 지나가다 아무나 툭 칩니다. 그러면 벌떡 일어나 관등성명(!)을 댑니다. 학교마다 고유번호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28120" (학교번호.. 아직까지 외워지네요) 더하기 학년반번호를 합쳐서 "둘팔하나둘공하나공여섯둘넷 (제가 1학년 6반이 맞는지는 기억이 안납니다. -_-; 7반이었나.. 24번은 맞는 것 같은데) 박**!"하면서 일어납니다. 그러면 간부가 학교 교훈이나 주소, 교장선생님 성함 등등을 묻습니다. 당일날 오전에는 학생수첩을 보면서 예상 문제를 달달 외우느라 정신없지요.

지금 그 당시를 생각하면... 당연히 "미쳤었지 미쳤어.."로 끝납니다. :-) 그리고 억울해서 가끔은 눈물도 납니다. 인권, 평등, 개인의 존엄 등을 배웠어야 할 시기에 서열과 규율, 그리고 폭력과 굴종을 스스로 몸에 익혀갔던,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나의 십수년이 너무 서러워서, 선생님들을 찾아가서 왜 그랬냐고 통곡하고 싶어집니다.

하긴... 머리가 길다고 치마가 짧다고 잡혀가야 했던 부모님들에 비하겠습니까마는.

  • Raymundo : 아, 학생회를 중심으로 '힘으로 성립되는' 질서가 있었던 덕에, 사적인 폭력이 (요즘 말하는 일진이니 하는) 들어설 입지가 좁았다는 게 상당히 아이러니컬한 장점이란 생각도 드네요. - 2003-9-17 1:46 am
  • 무아 : 완전 파쇼들... - 2003-9-17 2:20 am
  • Raymundo : 단어가... 그다지 틀린 말도 아닙니다만, 막상 남이 그리 말하니까 좀 착잡하네요. ^^;; 저희 학교가 게다가 사립이고, 선생님들의 90% 이상이 모교 출신이고,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는데 교장 선생님이 거의 이십년 가까이 교장직에 계셨을 겁니다. 전쟁을 겪고 자라 박정희 정권을 거치며 원로가 되신... 이해가 전혀 안 가는 것도 아니고, 들리는 바에 의하면 교장 선생님이 바뀌신 후로 저런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죠. 다른 학교들도 그렇고.. - 2003-9-17 7:54 am
  • Zehn02 : 동아리 탈퇴는 무슨.. 그냥 안나가다 보면 멀어지고 마는 거지.. 이상한 사람들도 참 많아요.. - 2003-9-17 11:11 am
  • dindoo : 계속해서 목이 터져라 소리지르는 학생들이 불쌍하기도 한데, 그래도 보는 사람은 재미있네요. ^^; - 2003-9-17 11:29 am
  • Raymundo : 어제 밤에는 링크만 올려놓고 나도 제대로 안 봤는데... 지금 느긋하게 보니 재미있긴 재미있구먼. ^^; 조회나 선배교육은 지금 생각하면 정말 기가 막힐 뿐인데, 저 응원은 뭐 일년에 한 두 번 있는 재밌는 추억으로 봐줄만 한듯.. - 2003-9-17 11:30 am
  • Zehn02 : 학교에서 어떤식으로든 애들을 잡으면 사실 큰 사고가 안나는 장점은 교사니까 인정하고 싶어요. 하지만.. 정도의 문제겠죠. - 2003-9-17 11:41 am
  • HaraWish : 중학교 시절. 단체기합 정말 무던히도 받았죠. '집단이 책임지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할 부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엉뚱하게 같이 당할땐 정말 참기 힘들었죠. 그 중에 가장 화났던 게. 중2땐데 조례시간에 선생님이 "온실 '앞'에 있는 화분들 버릴 예정이니 필요한 반은 갖다 쓰라고 하더라."라고 얘기해서 애들이 정말 신나게 화분을 옮겼는데. '실수'로 온실 안에 있던 교장(존칭 안 붙입니다. --;)이 아끼는 화분들도 옮겼죠. 조금 과해서 교실 뒤를 정글처럼 만들었고, 다음 수업 들어오신 선생님이 "아, 니네가 잘못 안 것 같다. 저건 원래 자리로 갖다둬라."고 해서 애들 모두 '아, 수업 끝나면 도로 갖다놔야 겠군. 이게 웬 삽질'그러고 있었는데. 때마침 지나가던 교장이 그걸 보더니 온갖 소리를 지르더니 곧바로(하던 수업도 중지되고) 체육선생을 불러서 단체기합을 주더군요. 그것도 그전까진 웬만해선 안 시키던 '원산폭격'까지 시켜가며. 거의 애들 다 쓰러졌죠. 억울해서 눈물이 다 나더라구요. 화분을 부순 것도 아니고, 실수로 교실로 옮겼을 뿐이고 다시 갖다두려고 한 것들인데.. 그러면서 다른 선생님이 "니네들이 이해해라. 저 화분들은 교장 선생님이 정말 아끼시는 것들인데 그래서 화가 나셨나보다."라고 하는데.. 진짜 어이없더군요. 화분만도 못한 학생들이라니. 중3때 집이 이사를 해서 이른바 '학부모 끗발 센' 여의도로 전학오고 나니, 완연히 달라진 문화에 당황하기도 했습니다만.. 아무튼 전 그래서 가끔 주위 친구들이 '아, 차라리 중고등학교때가 좋았지.'라고 하면 진저리를 치곤 한다죠. 대체 그 시절로 왜. 아우, 쓰다보니 옛기억에 흥분해서 길어졌네요. 죄송;; - 2003-9-17 11:51 am
  • 무아 : 학교의 가장 큰 문제는 '잘못하면 맞는다'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교육...일듯... - 2003-9-17 9:0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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