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화면으로]Diary/어머니와핸드폰과컴퓨터

마지막으로 [b]

/어머니와핸드폰과컴퓨터

주인장의 고향집에는 작년까지 컴퓨터가 없었습니다. 컴퓨터가 없으니 인터넷 라인을 설치했을리도 없고. 라인이 있거나 근처에서 무선랜이 잡힌다해도 (아파트도 아니라서 남의 집 무선AP가 잡힐 것 같지도 않습니다만) 당장 주인장에게 노트북이 없으니, 명절에 내려가면 인터넷을 쓰거나 하려면 PC방에 가야했지요.

아버지는 회사일 때문에 조금은 다루시는 것 같지만, 어머니는 한두번 시민강좌 이런 걸 받아는 보셨다는데 너무 어렵다고 하시고, 그 후로도 지속적으로 사용을 안 하시니 말 그대로 컴맹이시죠.

그러다가 작년에 손녀가 생기니까, 손녀 얼굴은 보고 싶은데 작은 아들네는 대전에 살고... 그래서 아쉬워하시는 터라, 싸이월드 같은 걸 통해서라도 보실 수 있게 해드리려고 저와 동생이 계획을 세웠습니다. 설 조금 앞서서 홈쇼핑 같은 데서 PC주문해놓고 인터넷설치하도록 한 후, 설에 내려가서 가르쳐드리자... 이러다가 정작 PC는 아버지 다니는 회사에서 버리게 된 걸 하나 가져오셔서... 결국 저희는 아무 돈 안 들이고;;; 드디어 집에 PC가 생겼습니다.

설에는 일단 동생네 미니홈피 들어가서 사진 보는 법을 열심히 설명해드렸지요. 일단은 뭘 어떻게 하셔도 컴퓨터 고장나지는 않을테니 걱정마십사하고 안심을 시켜드려야 했고, 그 다음은 키고 끄는 법, 그 다음은 바탕화면에 만들어 둔 미니홈피 바로가기를 더블클릭해서 미니홈피 창을 띄운 후 사진첩 들어가는 법, 그 다음은 스크롤바를 써서 아래로 내리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법 등등 순으로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설이 끝나서 올라왔고... 속으로는 내심 '결국 혼자 해보다가 뭔가 꼬여서 실패하고 그 후로 계속 먼지만 쌓인채 내버려두고 계신 건 아닐까' 걱정도 되었습니다만... 자주 들어가서 손녀 사진 구경은 잘 하셨나 봅니다.

몇 달 후에 뭔가 문제가 생겼었나본데, 전화로 제가 들어서는 도저히 인터넷 회선의 문제인지 PC의 문제인지도 구분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서 일단 SK브로드밴드 기사를 대신 접수해드리고, 삼성 서비스센터 전화번호를 찾아서 알려드렸습니다. 주말이라서 삼성 쪽 접수는 제가 하지 못하고 번호만 알려드렸는데, 어머니가 전화를 하셔서 삼성 서비스기사가 왔나본데, 뭐가 문제였는지는 제가 알 수 없지만 그 후로는 잘 된다 그러더군요. 어쨌거나 이런 사연이 생기는 걸 보니 계속 잘 쓰고는 계시나 보다 하고 있었죠.




이번 추석에 내려갔더니 이젠 전자우편을 쓸 수 있게 해달라시더군요 맘 같아서는 스팸 걱정이 거의 없는 지메일 만들어드리고 싶었지만...;;; 모 포탈 아이디 하나 만들어드리고, 남에게 메일주소를 알려주려면 뭘 불러줘야 하며, 메일을 읽으려면 (쓰는 건 일단 보류) 어찌해야 되는지 가르쳐드렸습니다. 그리고 비행기표를 인터넷으로 사는 법을 알고 싶어하셔서 한번 쭉 구매까지 해보고 (바로 취소했지만) 왔습니다.

어제는 전화가 왔는데 가톨릭 제주교구 주교님의 설교 말씀을 다른 신자분에게서 메일로 받았는데 내용이 안 보인다고 하시더군요. 메일의 내용이 안 보인다는 얘기만으로는 도저히 상황을 짐작할 수 없었으나... 추석 때 슬쩍 네이트온을 깔아놓고 어머니 아이디도 만들어서 저와 동생을 친구추가해 두었지요 ^^; 네이트온의 원격지원을 말만 듣다가 처음 써봤는데 확실히 편하긴 하더군요.

어머니의 화면을 들여다봤더만, 주교님 설교는 HWP파일로 첨부되어 있었던 겁니다. 첨부 파일을 여는 방법을 전화로 설명하면서 손으로는 제가 마우스를 제어하면서 시범을 보이고, 직접 해보시게 했습니다. 첨부 파일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지 확인할 겸 메일을 보내보라고 하셔서 사진 몇 장 첨부해서 보내드렸더니 잘 보신 것 같습니다.




근 일년간 이 과정을 거치면서 새삼 느꼈는데...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처음 배워 쓰려면 너무 어려운 게 많습니다;;;

비행기표를 인터넷으로 사고파 하셨던 것도, 인터넷으로 구입할 경우 할인을 더 받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이제는 전화로 구매하는 게 너무 어려워졌다는 이유가 크더라고요. 비행기표뿐 아니라 웬만한 서비스들은, 예전처럼 바로 상담원이 받아서 처리해주는게 아니라 ARS응답기의 속사포같은 안내를 듣고 시한폭탄 조작하듯이 번호를 다시 누르는 과정을 몇 차례나 거쳐야 합니다. (교통, 통신 등의 필수서비스들의 경우는 의무적으로 예전과 같이 바로 상담원과 통화할 수 있는 경로를 두게 했으면 좋겠군요. 사기업의 경우도, 여차하면 통화료에 서비스이용료를 추가로 부담하는 형식으로라도 이런 창구를 운영했으면 싶고요)

인터넷으로 항공권 예매하는 과정도, 최대한 어머니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진행을 하려고 했더니 깨알같은 안내문은 왜 이리 많고... 시키는 대로 결재 과정을 진행하는데 갑자기 상단에 노란 줄이 뜨면서 (ActiveX 때문에) 덜컥 뭐가 잘못됐나 싶게 진행이 멈춰버리고... 힘들게 힘들게 한 단계씩 나아가는 데 그 와중에 광고창이 마치 엄청 중요한 것처럼 치장하고 끼어듭니다. (인간적으로 신용 카드 결재 완료창에다가 개인 정보 보호 운운하면서 뻘건 바탕에 주민번호 넣게 만드는 광고창은 너무 치사하지 않나...) 제가 미리 한번 쭉 해보면서 액티브엑스나 각종 보안 플러그인 설치를 해놓았으니 망정이지 안 그런 상태였으면 도저히 직접 하실 수 없으셨을 듯.

돈이 오가는 과정이다보니 엄격하게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치고, 메일 계정 하나를 만들려니 약관은 왜 그리 많고 넣어야 할 정보는 또 왜 그리 많고, 본인 확인을 위해서 다시 휴대폰으로 문자를 받아야 하고... 아직은 메일 주소가 안 알려져서 그렇지, 언제 스팸을 처음 받고 당황하실지도 참 걱정입니다.

뭐 어린애들이 부모 컴퓨터를 혼자서 잘도 익혀가며 쓰는 거 생각하면 어른들도 하려면 못 할 거 없지 싶긴 한데, 결정적으로 어머니가 저처럼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계실 수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아뭏든 하나둘씩 익혀서 쓰시는 걸 보게 되니 기쁘기도 하지만 괜시리 맘이 아프기도 하고, 걱정되는 것도 많군요. (제일 걱정되는 것 중 하나는, 무료할 때 할 수 있게 온라인 고스톱 같은 거 접속하게 해달라 하시는 것... 채팅창 보면 기절하실텐데 -_-;;;;)




화제를 약간 돌려서, 휴대폰 역시 작년까지는 오직 전화만 걸고 받으셨고...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넣는 건 주변에 도움을 청하시는 듯 했고, 단축번호 지정하는 건 제가 내려갔을 때마다 갱신해드리고... 그러셨는데...

동생이 손녀 사진을 어머니 휴대폰으로 보내 드리고 보는 법을 알려드릴 무렵인가 해서... 어느날 어머니가 보낸 문자가 제 전화에 찍히더군요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엄만데 문자 보내본다, 받으면 알려다오" 정도였겠죠. 오오 드디어 문자를 쓰실 수 있게 됐구나 하고 넘어갔는데, 점점 평소 같으면 전화로 하실 말씀을 문자로 보내시더니, 제가 보낸 답장에 반응하는 속도로 봐서 저보다 더 빨리 타이핑하시는 것 같은 느낌마저!! (주인장은 휴대폰 자판으로 타이핑하는 걸 매~~우 싫어해서, 문자 보낼 일 있으면 웹으로 보내고, 컴퓨터 앞이 아니라면 컴퓨터 앞에 앉게 될 때까지 답장을 미루고 -_-;;;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냥 전화를 겁니다. -_-;;;;; 따라서 타이핑 속도가 십년째 고만고만...)

쓰시는 문장도 내용은 점점 길어지고 어느 날부터 이모티콘이 등장합니다 도대체 "^.~" 이런 건 누구에게 배우셨을까... "알았다"고 꼬박 하시던게 "오케이"를 거쳐 얼마전에는 "아라따~~"라고 날아오더군요 ^^; 엄마 화이팅~~




P.S. 쓰고나니 괜히 이것저것 섞여서 길어졌는데... 원래 무슨 얘길 적으려고 했었냐 하면, 네이트온 원격제어로 어머니의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전화로 "저기 왼쪽위에 ***라고 적힌 거 보이시죠? 거기에 마우스 갖다 대시고요~"라고 말하면서, 제 손이 저도 모르게 제 모니터 화면의 왼쪽 위를 가리키고 있더라는 겁니다. ^^;; 손가락을 뻗었다가 내가 뭐하는 거야 하면서 내려놓고는, 잠시 후에 또 뻗게 되더라고요. 몰입했달까;;;

-- Raymundo 2009-10-10 4:45 pm

Comments & Trackbacks

어머니의 핸드폰 문자 배우는 속도는 나도 놀랬음. 영문과 한글, 특수문자까지 섞어서 보내실 때도 있음.
또 네이트온 원격지원..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이 지원요청을 하는 거였으면.. 뭐 밑에, 무슨 모양의 아이콘이라고 아무리 말해봤자 모를텐데.. 지원을 해 주는 사람이 요청을 하고 지원 받을 사람은 수락만 하면 되니 꽤 괜찮은 센스..

-- Zehn02 2009-10-11 3:3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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