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충만아저씨어제 트위터에도 짧게 썼던 얘기지만. 저녁 식사를 고깃집에서 하고 있었는데, 테이블이 구역을 딱딱 맞춘 게 아니라 드럼통 위에 동그란 판으로 된 식탁이 여기저기 놓여 있는 구조였음. 간격도 비좁았고. 곱창이나 조개구이집 분위기랄까. 제일 가운데 쪽 식탁에 같은 직장 사람들로 보이는, 유니폼 잠바를 입은 다양한 연령(40대~60대 정도?)의 아저씨들 예닐곱 명이 앉아 있었다. 그러고보니 그런 구성원들이 술까지 마시고 있었는데도 그다지 시끄럽지 않았던 것도 신기하군. 식사가 끝날 무렵에 그 테이블에서 아저씨 한 사람이 화장실을 가려는지 일어섰는데, 그 테이블과 우리 테이블 사이를 지나가야 해서 아내가 조금 비켜줘야 했던 상황. 그 아저씨가 아내 옆에서 멈추더니 완전 차렷 자세에서 허리를 굽히면서 양해를 구하는 게 아닌가. 이 모습부터 일단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게 진짜, 여기서 글로 설명하자니 불충분하다 느껴질 정도로, 표정부터 손끝까지 몸에 "정중함"이 배어나왔음. 그 아저씨가 화장실에 가는 걸 보니까 나도 마려워져서ㅋ 몇 초 후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들어갔더만 눈 앞에 세면대와 거울이 있고, 좌우로 길이 갈라져서 다시 남,녀 팻말이 붙은 문이 하나씩 있는 구조. 여성용 칸이 비어있긴 하지만 거기 들어가기도 뭣해서 그 아저씨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오래 참다 들어가셨는지ㅋ 조금 오래 걸리긴 하더라. 그리고 뒤에 내가 기다리고 있는 줄 모른채로 옷도 좀 유유자적하게 입던데, 뭐 나야 아직 '마려운'ㅋ 입장이다보니 좀 빨리 나와줬으면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급한 것도 아니고, 그냥 조용히 기다렸다. 문이 열리고 그 아저씨가 나오는데 내가 앞에 있으니까 흠칫하더니, 또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하는 게 아닌가. 뭐가 죄송하다는 거였을까. 배출에 시간이 오래 걸린 거야 잘못도 아니고 사람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 다음에 옷을 느릿느릿 입고 나온 거라면 그거 뭐 몇 초나 걸렸다고. 변비라도 있어서 십오분 동안 화장실 칸을 독점했다면 또 모르겠는데... 결국 그 분의 말뜻은 "뒤에 사람이 있는 줄 몰라서 서두르지 않아서 죄송하다"는 것이었을텐데, 보통은 이런 걸 죄송해하는 사람 없지 않나. 내가 막 당황해서 간신히 "아,아,아뇨!" 하고 더듬었음. 화장실에서 나와보니 그 테이블 다른 일행들은 여전히 먹고 있고, 그 아저씨가 계산을 하고 있던데, 계산하며 자기 일행을 바라보는 표정이 또 어찌나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던지... 그리고 계산 끝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갈 때도 아까처럼 아내 뒤로 지나가야 하는데 마침 아내는 아이폰 들여다보며 놀고 있어서 눈치를 못 채고 있으니까, 비켜달라는 말을 '정말정말정말정말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꺼내려는 기색이 역력하더라. 그래서 반대편에 있던 내가 부랴부랴 아내를 불렀음. 상상이 되는가? 우리는 우리 자리에 제대로 앉아 있었던 건데, 그 아저씨의 길을 막고 있었다는 게 죄송스럽게 느껴졌다니까! (실제로 내가 부르니까 아내가 몸을 앞으로 당기면서 그 아저씨에게 죄송합니다라고 사과까지 했다ㅋㅋ 뭐 아내는 그 아저씨가 한참이나 못 지나가고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만) 어제 간만에 홍대까지 외출도 했고 예쁜 까페도 갔고 그 식당에서 먹은 고기도 맛있었지만, 최고 수확은 그런 사람을 봤다는 게 아닌가 싶음. 역시나 저 좋은 인상에는 인격이 배어 있는 거구나 싶었다. 하루 지난 지금까지도 기분이 좋다.-- Raymundo 2012-2-10 1:55 pm
Comments & Trackbacks처음엔 제목을 반어법으로 적으신줄 알았습니다, 읽다보니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지금까지 살면서 저런 인품을 가진분을 몇번(아니면 전무할지도..) 보지 못했다는게 씁쓸하기도 하네요.저런 인품을 가진분들이 사회에 조금만 더 많이계셔도 XX녀 XX남 같은건 안올라올듯 합니다. -- 고민하지말고 2012-3-3 9:4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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