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화면으로]성년의날

마지막으로 [b]

주인장군대에 있을 때 성년의 날을 맞았다. 만 20세가 되는 해에 행사를 하는터라 보통은 이등병 때 맞게 되는데, 가끔 꽤나 군대를 일찍 온 경우 병장 때 맞는 사람도 있고, 주인장 같은 경우는 일병 2호봉인가 그랬을 거다.

그 주에 춘계진지공사가 한창이라, 주인장 역시 부대 옆에 있는 훈련장에서 열심히 흙을 퍼나르고 있었는데, 밑에서 상황차가 오더니 올해 만 20세가 되는 인간들 다 모이라고 그런다. 열 몇 명이 모였고 그 중에 주인장이 제일 고참이었고, 우리 풋내기 일동은 그저 막노동판에서 잠깐 쉬게 된 것에 기뻐하며 (물론 기뻐하는 내색은 전혀 하지 못했지만) 대대 본부로 이동하였다.

본부포대(포병이라서, 중대라고 하지 않고 포대라 한다) 내무반 양쪽 침상에 네 개 포대 사병들이 나란히 앉아 있으려니 한쪽에 대대장이 들어오고 반대편에는 대대 인사장교가 들어와 앉는다. 앉은 자리 앞에는 은박 접시에 과자들이 말 그대로 바닥만 간신히 가린 채로 놓여 있었고, 우리는 그걸 먹으며 대대장의 축사를 들었다.

평범한 축사였는데... 중간에 대대장이 물었다. "군대 오니까 힘든가? 아니면 재미있나? 재미있는 사람?"

당연히... 재미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들 눈치만 쭈뼛쭈뼛보고 있는데, 그 자리에서 그나마 고참 축에 드는 주인장 머리 속에는 다음 장면이 상상이 되기 시작했다.

 대대장: "그럼 힘든 사람?"
 사병들: (힘든 건 당연하지만 누가 손을 들겠는가) "..."
 대대장: "왜 사내자식들이 이렇게... !@#$%$!^%@&@#%@"
 인사장교: (속으로) "이 놈들, 행사 끝나면 바로 연병장이다" (이런 거 가지고 설마 기합씩이나 주겠느냐..라고 생각할
           지 모르나, 당직사관에게 밥을 떠다 주지 않았다고 두 시간 동안 구를 수도 있는 곳이 군대다)

위 상황은 절대 피해야 된다고 생각한 주인장. 미친 척 손을 쭉 펴들며 "일병! 박!근!영!"을 외쳤다. '호오?'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대대장, 주인장의 예상대로 두번째 질문을 한다.

 대대장: "그래, 자네는 어떤 점이 재미있던가?"
 주인장(음.. 둘 다 '장'이로군 -_-): "학교에 있다가 와서 운전병이 되다보니 운전이나 정비 같은 것도 새롭게 익히게 
         되고 밖에서 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해 보니 힘들기도 하지만 보람도 있고 이러쿵 저러쿵 주저리 궁시렁..."

당연히, 전혀, 절대로, absolutely, 맘에 없는 말이다. 맞은 편에 있는 사병들의 표정은 '뭐 저런 미친 놈이 다 있나'라는 표정 반, '저런 구라쟁이를 봤나'라는 표정 반인데, 오직 대대장만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_-;

다시 대대장의 축사가 계속되다가, 또다른 질문이 나왔다.

 대대장: "신병들이 우리 부대에 와서 신고를 할 때 이 대대장이 꼭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게 뭔지 기억나는 사람 있나?"

다시 좌중에는 침묵이 흐르고... 주인장은 대대장 신고를 한 지 석 달 쯤 지났던 터라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주인장의 바로 옆에 앉은 우리 포대의 이등병이 손을 번쩍 들었다.

 이등병: "옛!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너무도 식상하고 흔해빠진 말 아닌가.. 기억 못 하는 게 당연하다. 옆에 이등병은 들어온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라 기억에 남았던 듯. 어쨌거나, 두 명의 부대원이 훌륭하게 답을 하는 것에 흡족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우리 대대장님. 맞은 편에 있는 인사장교에게 한 마디 한다.

 대대장: "인사과장, 이 윤XX 에게 포상휴가 내려줘"

오옷, 이런 아까울 데가 있나. 왜 이거는 기억을 못 했을까 하고 속으로 안타까워 하는데, 이런 내 맘을 알았는지 대대장 한 마디 더 한다.

 대대장: "옆에 박**이도 같이 보내줘"

아아... 축구도 사격도 영 잼병인 운동신경 빵점의 주인장.. 복무 기간 동안 포상 휴가란 것은 꿈도 못 꾸겠지라고 체념하고 있었는데...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뺑뺑이 도는 게 한 순간이듯, 포상 휴가를 받는 것 역시도 어이없다못해 허탈할 지경이다.

어쨌거나, 주인장은 첫 정기 휴가를 나오기 전에 (우리 부대는 100일 휴가 같은 게 없었기 때문에 첫 휴가가 일병 정기 휴가였음) 5일짜리를 받아 나올 수 있었다.

장미 꽃다발도, 향수도, 첫키스도 없었고 (근데 이것들 다 남자가 여자에게 해주는 거 아닌가? 그럼 남자가 받는 건 뭐지?) 시커먼 흙투성이 남정네들의 땀냄새만 자욱했던 주인장의 성년의 날은, 그렇게 어이없는 휴가를 선물로 주고 지나갔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쓴웃음이 나온다. :-)

주인장은 그 후에도 포상휴가를 두 번 더 받았는데, (그 중 두번째 것은 제대 직전이라서 유야무야되었다) 그 이유가 또 기가 막히다. 지금은 졸리니 다음에...
저는 군대를 너무늦게가서 성년의날은 사회에서 치루고갔지만(그냥 넘어갔지만 --;)..

저는 입소후 3사단 백골부대에서 훈련을 받았는데..놀랍게도(!) 백골용사상을 받게되었답니다. 그럼 자대배치후 휴가를 내보내준다는군요. 그러나..3사단에서 신병훈련만 받고 자대비치는 다른부대에...그래서 백골용사상 받은것은 아무 소용이 없게되었지요. 흑흑.
-- Nyxity 2003-5-22 11:12 am

저런... 얼마나 억울했을까...
-- Raymundo 2003-5-22 8:55 pm


제가 성년의 날을 맞았을 때, 부대에서 초코파이 파티를 벌였었죠. 10분 동안 -_-a
-- Bab2 2003-5-22 5:08 pm

휴가 따낼 건덕지가 없었군요. ^^ 그래도 맘은 편했을런지도...
-- Raymundo 2003-5-22 8:5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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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집일: 2014-5-19 9:58 am (변경사항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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