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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시위의 두 가지 모습

원문보기 : [민주노동당 홈페이지 게시판]

촛불시위의 두 가지 모습 : - 민주노동당의 무능과 기회주의 자유주의자

촛불시위는 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비극적 결말을 맞을 것 같다. 진보 이전에 국민국가로서 너무나도 정당한 요구를 50년이 지난 후에야 하는 것은 - 놀라지 마시라. 소파는 1966년에 체결되었고, 그 전에는 미군을 한국 법정에서 처벌할 일체의 방법이 없었다 - 당연히 비정상적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시위는 가장 큰 수혜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노동당이 아닌 노무현이다. 촛불시위는 노무현의 당선에 결정적 공헌을 하였다.

당연하게도 이제 노무현이 당선이 되었으니 그 역사적 사명도 다해가고 있고, 아마도 비극적 결말을 맞을 것이다. 경찰은 “평화적인” 촛불시위는 보호할 것이나, 불법이나 폭력시위는 엄단하겠다고 어느 때처럼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관할 경찰서장의 허가 없는 야간에 행해지는 모든 시위는 불법이고, 경찰을 밀치거나 하는 행위는 모두 공무집행방해이기 때문에 경찰의 이러한 엄포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합법이냐 불법이냐가 혹은 폭력이냐 비폭력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경찰은 아주 고전적이고 효과적인 방법, 착한 시민과 소수의 극렬분자로 구분하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무능

민주노동당은 여중생 문제 해결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싸워왔다. 그러나, 그 정치적 효과는 모두 노무현이 가져갔다. 이것은 마치 민족민주 운동권의 풍찬노숙의 결과인 87년 6월 항쟁의 성과물을 양 김씨가 가져간 것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가장 큰 문제는 민주노동당이 이 문제를 관성적으로 대했다는 데에 있다.

냉정하게 보자면 이 사건은 어느 정도 드라마틱한 요소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윤금이씨 살해 사건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불행한 일이지만 한국사회에서 누가 매춘여성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앳된 용모의 여중생 두명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누군들 가슴속에 측은한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86년에 의문의 죽음을 당한 가스 충전소 노동자인 신호수의 죽음은 알려지더라도 아무런 파장을 일으키지 못하지만, 87년 서울대생인 박종철의 죽음은 만인의 분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안이었다. 현세의 모든 억압과 고통을 참으면서 사회 유지의 결정적 기여를 하는 자식 가진 부모들이 노력해서 명문대 보내 놓았더니 변사체로 돌아온다면 이는 어느 누구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민주노동당 내 어느 누구도 엄청난 대중적 파도를 일으키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 결과 아무런 전략과 기획이 없었고, 대선과는 어떠한 관련을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치밀한 고민이 없었다. 한 쪽에는 엄청난 희생과 불굴의 의지로 투쟁을 계속한 당원들이 있었다. 다른 한 쪽에는 이를 냉소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군의 당원들이 있었다. 전자는 가열찬 투쟁을 낳았지만 효과적이지 못했고, 광화문 시위에서 권영길 대표조차 연설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후자는 이 사안이 정말로 중차대한 사안이며, 이에 대응하지 못할 경우, 대선패배는 물론이며 운동권의 도덕적 우위조차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그 결과는 “죽 쒀서 개 주었다”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노회한 노무현을 보라. 촛불시위의 주체가 불특정 다수의 시민이라는 것을 이미 파악한 그는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여 촛불시위를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범대위를 만난 자리에서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범대위가 촛불시위를 시작한 것도 아니고, 범대위가 하지 말라고 해고 촛불시위는 계속되었을 것이다. (이미 분리의 수순을 밟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은 이는 범대위와 시민들을 분리하면서 교묘하게 자신의 입지를 보존하려고 하였다. 이는 노회한 자유주의자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하나의 쟁점을 의제로 만들어 선도하였음에도 이를 자신의 정치적 성과로 남기지 못하는 것은, 억울하기는 하지만 정당 이전에 정치조직으로서의 함량미달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몽준 파동과 촛불시위, 이는 2002년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빠져 나올 수 없는 함정이었다. 전자는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차이는 있지만, 이 두가지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은 여전히 유아기에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다.

기회주의 자유주의자

이 번 사건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기회주의 자유주의자”의 모습이다.

세상은 노사모들이 바라보듯이 그렇게 유치찬란한 원칙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냉정한 힘과 힘의 대립이며, 경제적 이해와 경제적 이해의 대결이다. 그 대결은 주어진 체제 안에서 누가 얼마만큼의 자원을 동원하는가에 따라 일시적으로 승패가 갈리는 끝없는 투쟁의 전장인 것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호도하는 기회주의 자유주의자들이 역사 상 최고로 활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범대위가 촌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촛불시위도 분명한 “불법”집회라는 점이다. “불법”집회는 최소한의 룰이 있지 않으면 바로 진압당하는 것이 관례이다. 광화문 촛불시위에 모인 사람들은 그야말로 집회라고는 참석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경찰은 폭력적이고, 언제라도 곤봉과 방패로 시위자들을 찍어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체감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범대위의 촌스러움이 자유주의자의 감수성에는 불필요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범대위라는 방패가 걷혀졌을 때, 그것은 입술과 이의 관계처럼 시민들은 무방비 상태에 놓여지고 만다.

노무현 당선 이후의 첫 촛불시위에서 그러한 폭력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났고, 중고생들초자 방패로 구타당하고 군화발에 짓밟힌 것이 보고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 중 상당수가 범대위 차량으로 와서 구타 사실을 호소했다는 것이다.) 방패가 걷힐 경우, 그러한 일들은 보다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게다가 현재 집회가 일어나고 있는 장소는 청와대보다 중요한 미 대사관이기 때문이다.

순진무구한 이러한 인식을 오히려 부풀리는 것은 기회주의자들이다. 오마이뉴스는 이 폭력사태를 시위대와 범대위의 무책임함으로 돌리는 기사를 발송하였다. 노무현의 촛불시위 자제발언 후, “반미”는 안된다며, 반전평화로 돌리자는 둥, 범대위의 불순한 의도 등을 외치는 목소리가 늘어가고 있고, 이것을 기회주의 자유주의 언론과 일부 노무현 지지자들이 부추키고 있다.

한국에서 “자유주의=기회주의”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이 점에서 드러난다. 현재 세계에서 전쟁을 일으킬 의사와 능력이 있는 나라가 누구인가? 차라리 미소냉전 하에서 소련도 여러나라를 침공하였기 때문에 그 때는 “반전평화”라는 것이 보다 정확한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는 미국 말고는 어느 나라도 그럴 능력도 의사도 없다. 미국의 이라크 경제봉쇄로 이라크에서는 페니실린이 없어 맹장수술조차 못해 아이들이 하루에도 수없이 죽어나가고 있다. 그런 폐허에 나라에 다시 공격을 하려고 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에 대한 핵선제공격의사를 철회하고 있지 않고, 북한이 위반한 것만큼이나 제네바 합의를 위반한 것 또한 미국이다.

손바닥으로 하늘가리기다. 현재에서 반전평화는 반미를 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반미가 아주 정확한 용어는 아닐 수 있다. 어느 한 나라를 총체적으로 반대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다른 나라 공격의사가 철회되지 않고는 어떤 형태의 반전이나 어떤 형태의 평화도 가능하지 않은 현실에서 이 무슨 말장난인가? 과학적으로는 반전평화가 맞을 수는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반미가 현 상황에서 결코 틀리지 않는 것이다. (반미=주사파라는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신은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지 않았는지. 주사파에 대한 미움이 현실에 대한 냉정한 상황인식을 가로 막고 있지 않은지. 만약 그러한 것 때문에 의식적으로 반전평화라는 용어를 택했다면 바로 당신이 주사파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소파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소파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반드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지 않더라도 해결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런 문제를 없애려면 미군철수도 한 방법일 수 있다. 그것도 분명히 주장할 수 있는 하나의 안인 것은 분명하다.(분명한 것은 미군이 주둔하는 어느 나라도 공무상 범죄에 대해서는 주둔국에 대해서 형사관할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만, 공무상 범죄의 인정주체와 상대방에게 재판권을 포기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외교적 절차와 힘이 다른 것이다.) 따라서, 미군범죄를 없애려면 미군철수도 분명히 한 안일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다양성을 존중한다면서 미군철수는 절대 안된다는 것 또한 자기 모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기회주의 자유주의자의 의도는 결국 촛불시위를 끝내려는 것이다. 범대위와 분리된다면 결국 촛불시위는 끝장날 수 밖에 없다. 범대위는 방패다. 시민들의 불법시위 참여는 그 방패안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시민들의 참여 없이는 범대위 또한 소파개정을 위한 동력을 지속할 수 없다.) 촛불시위가 끝나야만 그들이 그토록 흠모하는 “노짱”이 편안하게 국정에 임할 수 있고, 노짱이 당선된 이상 더 이상의 반미는 불필요한 것이다.

분리를 통한 비극적 결말

촛불시위는 이제 분리된다. 아마 그 결과는 기회주의 자유주의자들의 의도대로 비극적으로 끝날 것이다. 분리된 촛불시위는 규모가 축소될 것이고, 범대위는 결코 굴하지 않는 불굴의 투사들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싸울 것이다. 그 결과는 곤봉과 방패이고, 체포와 처벌이다. 아마도 반전평화 시위자들에게는 지나친 폭력은 행사되지 않을 것이다. 대신 경찰이 점잖게 충고할 것이다. “어이 판 끝났어! 빨리 접어!” 또는 “야간시위는 불법입니다. 세 번 해산하라고 방송할 때까지 해산하지 않으면 강제해산하겠습니다. 해산하라! 해산하라! 해산하라!”

민주노동당의 길

아마도 자유주의자와의 당분간 힘든 싸움이 지속될 것이다. 지금은 맞대응하기 보다 차분히 분석하고 준비할 때다. 과거보다는 힘들겠지만, 이제야말로 진검승부다. 칼을 오래 날카롭게 갈면 푸르스름한 빛이 난다. 모든 당원들이 하나씩 칼을 갈았으면 한다. 그 칼로 더 이상 “죽 쒀서 개 주는 일”도 없도록 하고, 그 칼이 집권을 위한 길에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댓글다는 데가 왜 없는거야?? 촛불집회를 보면서 씁쓸했던 이유를 알 것 같네요. 분명히 틀린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내 생각하고 같은 부분도 꽤 있는데 왜 나는 이다지도 삐딱한 마음이 드는지.. 음음음... 그리고 줄바꿈이랑 서명은 어떻게 해야 들어가는 거에요? zehn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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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집일: 2012-2-11 12:25 am (변경사항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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