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화면으로]농양제거수술

마지막으로 [b]

뭐 수술 받은 게 자랑거리도 아니고, 부위가 좀 민망한 곳이긴 합니다만, "병원을 잘 만나야 된다"는 교훈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제 경험담을 끄적입니다. 게다가 예전에 모 사이트에서 비슷한 증세를 겪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 있는 것 같아서 말이죠.

몇 년 전부터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97~8년 경?) 주인장의 우측 엉덩이, 정확히는 볼기와 항문의 중간 쯤 되는 부분이 부어오르더니 곪아 터지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첨에는 에게 뭐지 하면서 넘어갔는데, 이게 고질병이 되어서 길게는 서너달, 짧게는 한 두 달에 한 번씩 곪더군요. 곪은 동안에는 의자에 앉는 것도 매우 불편하고, 심할 때는 걷거나 누워있을 때도 너무 아파서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터져서 피고름이 나오고 나면 며칠 후 아물고 아무 일 없던 듯이 있게 되지요.

당연히 병원을 갔는데... 몇 년간 수십 번 증상이 생겼었을 텐데, 시간이 안 맞는다거나, 어차피 터지고 나면 원래대로 돌아오기 때문에, 증상이 생겼을 때 병원을 간 것은 그 중 절반도 안 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쨌거나 그간 들렀던 피부과가 네 군데인가 되었고 각각의 병원을 한 번 또는 여러 번에 걸쳐 다녔었는데... (아래는 몇 년에 걸친 기억이라 순서는 잘 기억 안 납니다)

처음 갔던 보라매 병원, (큰 병원이라 좋을 줄 알았건만) 그 때는 곪아서 부어오르지 않았을 때 갔더니만 젊은 의사가 갸우뚱 하더니 지금은 잘 모르겠고 부으면 오라고 하더군요. 진짜 예약하기도 힘들고 5분 진료에 한시간 대기하는 걸 며칠 겪고 나니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두번째 병원은 터미널 상가에 있던 개인 병원이었는데, 의사가 그러더군요. 피곤할 때 입술 끝이 곪는 것처럼, 몸 상태가 안 좋을 때 이렇게 감염되어서 곪을 수가 있다고. 그 말인즉신 이 증상이 생기지 않게 할 방법은 없고, 곪으면 와서 째고 소독하는 걸 반복해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평생 이렇게 몇 달에 한 번씩 고생을 해야 하나 싶어서 눈앞이 깜깜해지더군요. 이 병원을 서너 차례에 걸쳐 다녔었습니다. 곪으면 가서 약 받아 먹고, 완전히 익으면(?) 째고 며칠동안 소독하러 다니고... 그리고 몸 속의 노폐물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상태에서 매일 앉아 있으면 그럴 수가 있다면서 씻을때 좀 세게 밀어보라고도 하더군요. 근데 저는 거의 매일 샤워하고 그때마다 때밀이 수건으로 나름대로 힘주어 닦거든요.

그 병원을 몇 차례 다니다가, 가까워서 집에서 걸어다닐 수 있고 깔끔해 보이는 병원이 있어서 그쪽을 가 봤습니다. 근데 여긴 (동네가 동네라서 그런지) 병원인지 피부 클리닉인지... 주로 레이저 시술 같은 걸 받으러 오는 손님이 많고, 결정적으로 의사가...
주인장 "몇 달에 한 번씩 곪고... 전의 병원에서는 피곤하면 입가에 곪는 것처럼 곪을 수 있다더라... 어쩌고 저쩌고..."
의사 "그죠? 피곤할 때 생기죠? 그럴 수 있어요.. 뭐 곪으면 째고 그럴 수밖에 없지 뭐..."
당시에는 이전 병원의 진단에 동의하는 내용이었기에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결국 주인장이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 뿐이었군요. 그리고 소독 효과가 있는 비누라면서 만 원 가까이 하는 비누를 팔고... 1

위의 세번째 병원을 또 매번 일주일 정도씩 서너 차례 다니고... 그러면서 또 일년 넘게 지나고...

그러다 지난 해 가을에, 또 같은 자리가 곪기 시작하더군요. 저 병원 말고 다른 곳을 가보자고 생각하고, 두번째 병원을 다시 찾아갔는데, 병원이 망했는지 이전했는지 터미널 상가에서 사라졌더군요. 어떻게 할까 난감해 하다가, 그 옆 건물에 있는 다른 피부과를 찾아갔습니다. 크기도 꽤 작고 의사선생님도 연세가 지긋하셔서 솔직히 불안했었는데...

이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진찰을 한 후에 말을 하기를,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수술을 한다는 것은 좀 불안합니다만, 잘 되면 더는 이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

그런데 결국 고름이 저절로 가라앉지는 않아서 또 째고 열흘 넘게 매일 다니면서 소독&드레싱을 했습니다. 그리고 학기말이라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아 미처 병원을 못 간 상태에서3 그만 또 부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작년 말에 한 번 더 째고 여러 날 오가며 소독하고...

그리고 드디어 올해 1월. 작년에 마지막으로 병원에 간 날 모 항문외과를 소개를 받았고, 1월 초에 그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내시경 검사 같은 거라도 하려나 싶어서 긴장을 했는데, 겉으로 좀 만져보고 뭔가를(손?) 쓰윽 집어넣다(어디에-_-;;) 빼더니, 장은 괜찮은 것 같다며 외부에서 농양만 제거하면 되겠다고 하더군요. 만세~

그래서 1월 6일날 오후에 수술 전 검사로 혈액, 소변, X-ray, 항문 초음파 등의 검사를 받고, 9일 월요일 아침에 입원, 오전에 하반신 마취 후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문제의 농양 주머니란 놈 좀 볼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볼까 말까 망설였는데, 의사 선생님이 "이거예요" 하면서 보여주더군요. 생긴 게 뭐랄까 곱창의 축소판이랄까.. -_-;; 굵기는 몇mm이고 길이가 몇cm 정도 되는 게 그릇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 썩을 놈이 나를 몇 년간 고생시킨 놈이로군"이라고 외치면서(물론 속으로만) 고별을 하고, 병실로 돌아왔습니다.

정말 간단하긴 간단한 수술이었지, 그 날 오후에 마취가 풀리고 한두 시간 더 쉬다가 집에 왔습니다. 오히려 곪은 걸 쨌을 때보다도 덜 아프더군요. (꿰매었기 때문인지도) 이 글을 쓰는 현재(1월 16일)는 수술한 자리를 꿰매 있는 상태이고, 이번 주말에 가서 실을 제거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이 수술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는... 앞으로 몇 달을 지켜봐야만 알 수 있겠습니다만, 정말로 몸 속에 뭔가 들어 있었고 그걸 빼 내었으니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앞으로 이렇게 수시로 곪아서 고생하는 일이 전혀 없는 것이겠죠. 부디 소망이 이뤄지기를...
-- Raymundo 2006-1-16 5:1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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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뭐 진짜 값어치 있는 비누였을 수도 있습니다만, 현재 제 눈에는 아주 밉보여 있어서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
2. 나중에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이게 심해지면 치루가 되는 것이더군요
3.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의사 선생님의 "이렇게 부어오르지 않았을 때 와서 검사를 받으라"는 얘기를 "이 정도까지 붓기 전에, 즉 부어오르기 시작할 때 와라"라는 말로 오해를 하는 바람에 갈 생각을 전혀 안 했음

마지막 편집일: 2012-2-11 12:25 am (변경사항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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