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화면으로]산지천

마지막으로 [b]

주인장은 산지천 자체를 본 적이 없었다. 주인장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복개되어, 30년이 넘게 햇빛을 보지 못한 곳. 제주시 동문로터리에서 (그 보다 더 상류는 어디서부터인지 모름) 제주항이 있는 바다까지 복개되어 있고 그 위에 낡은 건물들. 그쪽 길을 밤늦게 지나가면 "놀다 (뭐하며?) 가세요"라며 붙잡는 아줌마들 (본인들이 판매직은 아닌 듯 하고, 영업직이겠지 아마) 을 많이 보게 된다.

십년 쯤 전에 있었던 일 하나.

당시 성당에서 중고등부 미사가 저녁에 있었기에, 고등부 학생회 회의를 마치고 나면 밤늦은 시간이 된다. (대학교에 왔더니 전혀 늦은 시간이 아니었지만) 집이 같은 동네에 있는 사람들끼리 무리를 지어 여학생들을 먼저 바래다 주고 가곤 했는데, 이 산지천 쪽으로 가는 것은 남학생들에게도 긴장되는 일. 정작 이쪽에 사는 여학생은 익숙해서 괜찮다고는 하는데.. 어쨌거나 몇 명이 이쪽으로 여학생들을 바래다 주러 왔다가 돌아가는데, 돌아오는 길에 예의 그 놀다 가라는 권유를 몇 번 받았나 보다. (주인장은 집이 반대 방향이라, 나중에 들은 얘기다) 여학생과 같이 있을 때는 못 본 척 하고 남자들만 남으니 접근하는 그들의 배려는, 둘이 있을 때는 못 본 척 하다가 혼자 있으면 접근해서 못살게 구는 도인들에 비하면 오히려 낫군.

그 때 일행 중에 신학교에 들어간 선배가 있었는데, 지금은 신학교를 그만두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신앙심과 진지함이 하늘을 찌르는 존경스러운 사람. 그런데 그 날, 그 젊은 나이에, 그 경건한 성격에, 그런 경험을 했으니... 집에 가는 내내 분을 못 참아 씩씩대며 가슴아파 했단다. 그 선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 얘기를 들으면 "어련했을까"라면서 배를 잡고 웃었다. 웃기는 했지만, 우리들에게도 역시 그 상황은, 산지천의 그 모습은 결코 기분 좋지 않았다 물론.

그런 산지천이 몇 년 전부터 복원을 한다고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명절때 내려갈 때마다 모습이 달라졌다. 언제부턴가 한쪽 도로변의 건물들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게 되었고, 다시 내려갔을 때는 건물들이 하나둘씩 없어져가더니, 이번에 내려갔더니 완전히 복원이 완료되어 있었다.

이번 2002년 추석 때, 산책삼아 구경을 갔다가 감탄 또 감탄. 그 시원스러운 풍경과, 물고기가 사는 맑은 천, 한쪽 끝에는 바다가, 반대쪽 끝에는 자그마한 광장에 노천 분수대가 놓인 그 모습. 한번 산지천공원을 구경해보시라.

확실히, 하기 나름이다. 그 옆에 있는 탑동공원 역시, 주인장이 중고등학교 때는 어두워지면 지나가기 꺼려지는 곳이었다. 그곳을 바다를 메우고 공원을 만들어 낮에는 자전가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옆에 바이킹을 비롯한 놀이기구도 있는데, 그것들을 타며 놀기에는 주인장은 이미 나이가..) 밤에는 모여앉아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여름이면 밤늦게까지 순찰차가 왔다 갔다 하고 가로등 조명을 밝게 한 것도 으슥한 곳이 공원이 되는 데 한 몫.

다만 지금은 사라진 그 건물들 안에서 먹고 자고 장사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그들에게도 만족스러운 일이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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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집일: 2002-9-22 3:31 pm (변경사항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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