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화면으로]그때그여중생/21편-23편

마지막으로 [b]

1. 21편
2. 22편
3. 23편 (마지막회)

1. 21편


『우스개 게시판-우스개 (go HUMOR)』 366141번
 제  목:[혁혁] 그 때 그 여중생(21)                                  
 올린이:boryry  (박종혁  ) 03/12/18 12:11  읽음:276  추천: 49   비추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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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숙제를 안해 왔다.

뭐라고 하기도 지겨워서..

아무 말 없이 수업을 시작했다.

그 애는

내 눈치를 흘끔 흘끔 보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미안해요.."

 "......"

 "선생님 진짜 화났구나..."
 
대답하지 않고 계속 문제를 풀었다.

 "그만 화 풀어요 담엔 꼭 해올게요.."

 "알았다. 수업하자"

계속 퉁명스럽게 굴자..

그 애는 힘없이 말한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

 "무슨 날인데?"

 "계속 화내시면 말 안할래요.."

 "응"

드디어.. 발끈해서는..

내 등짝을 팍 치면서..

 "이 밴댕이 속알딱지!"

-_-+ 왜 이런 소릴 들어야 하지?

 "너 적반하장이라는 말은 알겠지?"

 "하지만 오늘 같은 날엔 좀 빨리 화 풀어요"

무슨 날인고 하니..

 "과외 시작한지 1주년!"

과연 기념할 만한 날이기는 했다.

그 애와 시작하기 전에도 그랬고..

이 과외를 하면서도 몇 개 더 했었지만..

세달 이상 가본 것이 없다.

그러고 보니..

철밥통이었군..

 "이제 화 푸실거죠?"

어휴.. 니 녀석한테 무슨 말을 하겠냐.
  
 "알았다 담 부턴 꼭 해와"

 "네"

녀석은 금방 생기를 찾고..

생글생글 웃으며..

책상 서랍을 뒤적거린다.

 "사실은 이걸 만드느라 숙제를 못했어요.."

녀석이 꺼내온 놓은 것은..

털실 목도리..

 "지금 여름이다.-_-"

계절 센스도 센스려니와..

정말 조악한 솜씨..

나는 집게 손가락으로 그걸 들어

이리 저리 살펴본 후..
 
 "이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뭐예요 그 태도는! 방학 시작하고 부터 계속 만들었는데!"

삐친 표정..

 "아.. 멋지네"

색상도 누리끼리한게..

 "안하고 다니면 울거예요"

 "뭐?"

녀석은 목도리를 획 뺏더니..

내 목에 칭칭 감아준다.
 
 "윽.. 뭐하는 짓이냐"

 "잘 어울리네"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뭐.. 구멍이 숭숭 난게 통풍은 잘 되겠네.."

 "-_-+"

녀석의 억지에..

목도리를 하고 과외를 하니..

땀띠가 날 지경..

끝나자마자..

얼른 집을 나서..

목도리를 풀어 제끼려는데..

그 애가 따라 나온다.

 "선생님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곱게 놔뒀다가 겨울에 할게 봐 주라-_-;;"

봐 주는 대신..

놀러 가자고 조른다.

그 애네 집에서 10분쯤 걸으면..

작은 하천이 나온다.

도시의 하천 치고는 맑은 편이었다.

 "사람들 많네..."

약간은 후덥지근한 초여름 저녁이었다.

녀석에게 죠스바 하나를 사 물려주고..

뚝방길을 걸었다.

 "그러니까 그 기집애가 말이예요..

그 애는

입술이 시퍼래져가지고 잘도 떠든다.

 "덥다.. 그만 걷구 여기 좀 앉자"

풀밭에 털석 주저 앉았다.

 "영감 같애"

하면서 내 옆에 앉는다.

 "너 많이 탔다.."

소매 없는 셔츠 밑으로

하얀 어께와 까만 팔의 대조가 분명히 드러난다.

 "어디 놀러 안가?"

 "엄마한테 말하면 고2가 방학이 어딨냐구 맞아 죽어요"

그 애는 어께의 사마귀를 만지작 거린다.

 "그거 자꾸 만지면 커진다"

 "뻥"

나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아냐 진짜 내 친구 중에도 그거 만지다가 지금은 주먹만해진 놈 있어"

 "에? 진짜?"

얼른 손을 뗀다.

 "커졌으면 어쩌지"

걱정스럽게 어께 쪽을 내려다본다.

뽈록 튀어 나온게 앙증 맞았다.

 "아까보다 좀 커졌네.."

 "어떻해..."

그 애는 사마귀를 자세히 들여다 보더니..

 "근데 선생님.. 이거 가까이서 보면 되게 귀엽다"

 "그렇네"

하면서 쿡 눌러 보았다.

내 손등을 탁 치면서..

 "커지면 어쩔려구 만져요"

 "남이 만지는건 괜찮아"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딴 시덥잖은 얘기를 하고 있는 동안..

벌써 노을이 진다.

 "선생님 있잖아요."

 "응"

 "전 원래 수학이 되게 싫었는데..."

 "그런데"

 "요즘 들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나의 교습법이 좋았단 얘기군.."

 "그게 아니라..."

녀석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 보면서.

 "이렇게 버벅 대면서도 대학가는 구나.. 하고 안심이 되거든요"

-_-+

 "그..그렇냐."

할 말은 없다.

그 애는 빙긋 미소를 짓는다.

노을에 물들어 얼굴이 빨갛다..

 "사실은 그 말 하려던게 아니라..."

 "아니라 뭐"

  "수학책을 보면 과외 시간이 연상되구...
  그러다 보면 즐거워져서... 한 번 더 보게 되요"

뭐-_- 그렇게 가지고 놀았는데 즐겁기도 하겠지..
 
 "그거 바람직한 현상이구나."

교과서에 HOT 사진 붙여 놓던거랑 같은 이치랄까?

얘는 이런 종류의 연상 작용에서 동기를 얻는 타입인 모양이다.

 "그런데... 아쉬운 일이 있다."

 "뭔데요?"

 "과외 이번 달 만 하고 그만 둬..."

약간 놀란 표정.

 "어? 왜요? 엄마가 그만 두래요?"

고개를 저었다.

 "나 군대 가잖아.. 가기 전에 한 두달 쯤은 정리해 둘 것도 있고.. 그래서"

녀석은 뭐라고 말 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얼굴을 한다.

 "그렇구나..."

무릎 위에 양팔을 포개고..

고개를 돌려 강 너머를 쳐다본다.

 "섭섭하냐?"

 "아니"

 "어라? 그렇담 내가 섭섭한데"

대답이 없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녜요 이제 그만 가요"

엉덩이를 털며 일어난다.

돌아 오는 길에..

그 애는 내 옷깃을 슬며시 잡으며

 "선생님..."

 "왜?"

 "군대 안가면 안되요?"

-_-;; 말이 되는 소릴 해라

 "그럼 나중에 가면 안되요?"

 "어디 한 군데 부러져서 입원이라도 하면 몰라.."

녀석은 말 없이 자리에 쪼그려 앉더니..

짱돌을 집어든다.

진지한 표정이다-_-;;

 "어.. 어쩔려구?"

녀석의 집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서로 말 없이 한참을 걷다가..

녀석이 천천히 입을 연다.

 "있잖아요.."

 "왜?"

 "나 많이 컸죠... 대견 스럽죠"
 
뜬금 없는 소리..

 "응.. 근데 그건 좀 내려 놓지.."

한 손에는 여전히 짱돌을 꼭 쥐고 있었다.

 "하긴.. 처음 봤을 때는 영락없는 철부지 여중딩이었으니까.."

중학교 강 타를 가지고 다니던 그 애..

하지만..

지금이라고 뭐...나아진건 그다지..-_-;;

라는게 솔직한 심정...

 "그 때 그 여중생이 이만큼 컸어요.."

 "그렇네.. 다컸네.."

무슨 소릴 하려는 지는 모르지만..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다른 한 손으로는 짱돌을 빼앗았다.
 
 "숙제만 좀 잘 하면 좋으련만.."

 "이제 열심히 할거예요"

아파트 앞에 도착하자..

녀석은 인사도 없이 총총 걸음으로 뛰어 들어가 버린다.

나는 담배를 한 대 물며..

그 애가 들어간 쪽을 한 참 쳐다봤다.

2. 22편


『우스개 게시판-100명을 웃긴 베스트 유머 (go HUMOR)』 54034번
 제  목:[혁혁] 그 때 그 여중생(22)                                   읽음:835  
 올린이:boryry  (박종혁  )   작성:03/12/18 22:43       추천:03/12/19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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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98년 겨울..

새내기 시절도 끝나가고 있었다.

뭐 특별나게 좋은 일은 없지만.

그럭저럭 아르바이트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가끔 수업 빼먹고 놀러 다니기도 하는 생활이

나름대로 만족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리 예쁘지도 않고 

특별히 자랑할 만한 점도 없지만.

귀엽고 착한 여자친구가 있었다.

 "진아 오래 기다렸어?"

나는 항상 약속 시간에 늦는 버릇이 있다.

 "아아니~"

진이는 늘 별거 아니라는 듯이 받아준다.

그래서 버릇이 나빠졌는지도 모른다.

 "먼저 들어가서 공부 하지"

 "공부 하기 싫어요오.."

몸을 베베 꼬며..

느릿느릿 말한다..

이럴 때는..

엉덩이를 톡톡 쳐 주고 싶다.

도서관 안에 들어서니..

기말 고사 기간이라 그런지..

자리가 꽉 찼다.

 "우와 자리 없다.."

 "그러게.. 고딩들은 지네 학교에서 하면 좀 안되나?"

이 도서관은..

우리에게는 특별한 장소이다.

처음 봤을 때...

진이는 책상에 엎어져 자고 있었다. 

 "저것 봐... 쟤 침 진짜 많이 흘린다"

내 친구 녀석이 가르키는 쪽을 보니..

옆자리의 조그만한 여자애가..

쌔근쌔근 자고 있었고..

국민 윤리책 표지가 흥건이 젖어 있다.

킥킥 거리며

친구들 몇 명을 불러..

자는 모습을 감상 하고 있는데..

진이가 눈을 뜬다..

엎드린채로 입을 아함~ 벌려서

하품을 한다.

병아리 같다고 생각했다.

일어나려고 하다가..

흠칫 놀란다.

침으로 바다를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하다.

 "깼어 깼어"

친구 녀석들이 킥킥 대며 말한다.

진이도 들은 듯...

어쩔줄 몰라하는 빛이 역력...

흥미 진진했다.

한참을 고민 하던 진이..

눈을 질끈 감고..

흥건이 고인 침 위로..

뺨을 스윽 옮긴 후..

다시 자는 척을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그렇게 하고 있나 지켜 보았다.-_-;;

진이는

10분에 한번씩 실눈을 뜨며..

우리가 갔나 안갔나를 확인하고는..

다시 자는 척...

1시간 동안 그러고 있더니..

진짜로 잠들어 버렸다-_-;;

"그 얘긴 왜 하구 그래"

"웃기잖아.."

진이는 얼굴이 빨개지며..

내 배를 주먹으로 토닥토닥 거린다.

그 때..

 "여기 제 자린데요"

고시생 스타일의 남자였다.

도서관 메뚜기란 참 귀찮은 일이다.

 "진아 넌 여기 앉아서 공부해"

 "어? 넌"

 "같이 있음 공부 진짜 하나도 안하겠다 난 저쪽으로 갈게"

 "웅..."

진이를 달래고..

자리를 찾아 다니다 보니..

눈에 익은 책 표지가 보인다.

중학교

 문 희 준

    3

이 녀석..

매번 엉덩이 한번 안 떼는 앤데..

왠일로 자리를 비웠는지...

아무튼 그 자리 밖에 없어서 앉았다.

한 삼십분 정도 공부를 하고 있었을까..

포니테일을 한 여중생이 나타났다.

 "아저씨 여기 제 자리예요"

 "응"

녀석은 자리에 앉아.. 

귀에다 이어폰을 꽂고 

책을 보기 시작한다.

마침 옆자리가 비어..

거기에 앉았다.

다시 책을 보려고 하니.

 "아저씨 대학생이예요?"

그 애가 말을 걸어 온다.

 "그런데"

 "이거 풀어 주세요"

중학교 문제 쯤이야..

쓱쓱 하고 풀어 주었다.

 "와 아저씨 공부 잘하네요?"

하더니..

고맙다는 말도 안하고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_-;;뭐..뭐야 지금 날 칭찬한거냐?

건방진 녀석이군.. 하며 

다시 공부를 하려하니..

녀석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공수레.. 공수거 .. 바람처럼 부질 없는것~"

-_-;;

그만 두겠지 하고..

한~참을 기다렸다.

도저히 안되어

 "야 잠깐만"

녀석은 이어폰을 빼지도 않고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본다.

 "좀 조용해 줄래?."

 "어머? 시끄러워요 이게?"

 "응"

그 애는 말도 안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어폰 한 쪽을 뽑더니.

내 귀에다 꽂아 준다.

 "공부만 잘했지 예술에는 무지하시군요"

 "자.. 잠깐 나 얘네들 싫어해"

그 애는 발끈한 표정..

 "잠자코 좀 들어나 봐요.."

하면서 계속 지 할일을 한다.

-_-;;

그럼 들어 볼까.. 하긴 '캔디'는 괜찮았던것 같기도...

 "-_- 이게 노래냐"

 "와 이 아저씨 진짜 웃긴다"

녀석은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자기 귀의 이어폰을 뽑는다.

그걸 내 귀에 꽂아주며..

  "빼면 소리 지를 거예요"

나는 처음 보았다.

이런게 바로... 세상이 말하는 빠순이구나..

잠시 듣고 있다가...

이어폰을 뽑자..

녀석은 진짜로 소릴 지를 기세..

나는 얼른 녀석의 입을 틀어 막았다.

 "알았어 알았어 조용해"

녀석은 내 손가락을 물어버린다.

아얏.. 하면서 손가락을 빼자
 
 "소리 안 질러요. 그냥 해 본 소리예요"

하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어폰을 끼고는..

다시 노래를 흥얼 거린다..

자리를 옮기는 수 밖에 없었다-_-;;

그러던... 그 애가..

 "선생님... 벽에 붙은거 떼버릴까?"

 "응? 무슨 소리냐....
  저거 만지기만 해도 소리 떽떽 지르더니"

 "나이도 나이니만큼 저런 짓하는 것도 남사스럽구 해서 말예요.."

 "훗.. 너도 늙었구나"

녀석은 피식 웃으며.. 혀를 쏙 내민다.

 "그런가?"

다음 과외를 가보니..

정말로 사진을 모두 떼어 내었다.

벽이 횡한게 내가 다 허전하다.

 "안 섭섭해?"

녀석은 잠시 망설이다가..

 "쬐끔.."

HOT는

그 해 가을부터 해산설이 들리더니.

이듬해 봄에 깨졌고..

곧이어 

문희준 1집이 나왔다-_-;;

3. 23편 (마지막회)


『우스개 게시판-우스개 (go HUMOR)』 366427번
 제  목:[혁혁] 그 때 그 여중생(마지막회)                            
 올린이:boryry  (박종혁  ) 03/12/19 17:42  읽음:443  추천: 88   비추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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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 이었다.

그 애는 그 날 따라 

숙제도 다 해오고

내 설명에 진지하게 귀기울였다.

돌아보면..

이렇게 별 탈 없이 끝난 것은 

손 꼽을만 하지 않을까 싶다. 

 "진작 이렇게 하지"

 "내가 뭘 어쨌다구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조금 가라앉은 어투다.

 "왜 그렇게 힘이 없어"

 "힘이 없긴요.."

아주머니에게 인사하고..

꼬마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준 후..

문을 나서려는데..

 "선생님 오늘 제가 바래다 드릴게요"

하며 따라 나선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게..

여름이 끝나 가고 있는 듯 했다.

한참을 말없이 걷다가.

집 앞에 다와서야..

 "선생님... 있잖아요"

 "응"

머뭇거리지도 않고 얘기한다.

 "저 선생님 좋아하는거 알았죠?"

나는 피식 웃으며

 "나도 너 좋아해"

 "아니 그런거 말구..."

진지한 표정이다.

나는 말 없이 녀석의 얼굴을 쳐다봤다.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좋아하나봐요"

 "후후.. 이 놈의 인기란.."

그 애는 눈을 흘기며..

 "장난 하지 마요 진지한 얘기 하는데"

 "......"

 "그럴일 없겠지만... 만약에... 만약이예요"

 "응"

그 애는 잠시 망설이다.

천천히 입을 연다.

 "선생님이 진이 언니랑 헤어지게 되고.. 
  2년 후에 나도 졸업 한 후라는 가정 하에서..."

언젠가 진이가 말한대로..

이 애 나이 때는 

잘 대해주고 놀아주는 상대에게

쉽게 정이 들어서..

좋아하는 감정으로 착각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절 어떻게 생각 하세요?"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한 때 철 없이 과외 선생을 좋아했었지..'라는 정도의 

추억담으로 남는게 좋다.

그래서...

 "조그만게... 까불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나는 녀석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며..

그렇게 밖에 말해 줄 수 없었다.

녀석은 머리를 부빈다.

 "씨..아파.. "

살짝 때린건데..

녀석은 진짜 아프다는 듯이..

눈물까지 찔끔 거린다.

 "너무 아파.."

나는 잠시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 보다가..

후... 한숨을 쉬고..

 "가.. 입대 하기 전에 한번 보자."

녀석은 느릿느릿 돌아서서.

터덜터덜 힘없이 걸어간다.

녀석의 축 처진 어께를 보고 있으니..

나도..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진다.

담배를 한대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지금은 아프겠지만....

초봄 추위처럼 금방 지나갈 것이다.

그런 나이니까...

.....

두 달은 금방 지나가서..

10월 중순이 되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녀석은 전화 한 통화 하지 않았다.

나도 이것 저것에 정신 없어서.

그 애의 일을 조금씩 잊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선생님... 안녕? 오랜만"

밝은 목소리..

 "응 오랜만이야 잘 지내?"

 "선생님 입대 언제예요?"

 "다다음주.."

 "아 다행이다.

녀석은 휴... 한 숨을 쉬더니

 "다음주 저희 학교 축제예요. 
  방송제에서 제가 사회 보니까 꼭 보러 오세요"

고등학교 축제는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머리를 바싹 깍고 

교정에 들어서니.

옛날로 돌아간 기분도 든다.

시작 시간 보다 조금 일찍..

강당으로 들어서니.

그 애는 뭔가 준비에 분주하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

왠지 모르게...

마음이 설렌다.

그 애는...

나를 발견하고는..

깡총깡총 뛰어 오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하하 꼴이 이게 뭐람"

-_-+ 끝까지 열받게 하는 녀석이군.

녀석은 나를 맨 앞자리로 데려간다.

 "스페셜 게스트를 위한 자리예요"

무대의 한편에서는 한 무리의 남자애들이..

무언가 요상한 군무를 연습하고 있었다.

경락이도 있었다.

헌데 녀석은... 

여장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뻣뻣한 동작으로

이상한 춤을 추더니
(내가 볼 땐 국민 체조에 가까웠다)

가발을 벗어서 땅바닥에다 던지며..

 "젠장 이딴거 못해"

소품을 확인 중이던 그 애..

탱탱볼을 집어들어 녀석의 뒤통수에다 맞추며..
 
 "이제와서 안하겠다면 어쩌자구"

소리친다.

 "하필 왜 나야 
  춤도 못 추고..
  내가 어딜 봐서 섹시한 댄서냐?"

그 애는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후후.. 어차피 웃길려고 하는 거니까..
  니가 제일 웃기거든"

경락에게 다가가서..

 "이걸 빼먹으면 안되지..."

옷 속에 풍선을 넣어주더니..

조물딱 조물딱 한다..

 "빵빵한게 섹시 하구만 뭘"

-_- 저런 아저씨 말투는 어디서 배웠을까.

아무튼..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들어오더니

강당을 가득 메우고..

그 애가 무대 한가운데로 나온다.
 
 "여러분 감사 합니다. 그럼 기대하시던..
  'ㅁ' 고등학교 문화제의 하이라이트.
  MBC 방송제를 시작 하겠습니다."

고등학교 방송제에 대해서..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예상대로 정말 조잡했다.

하지만..

꽤 날카롭게..

시사적인 문제를 다루는 코너도 있었고..

전반적으로 재기 발랄함이 돋보이는 구성에

나름대로 볼 만 했다.

시간이 흐르고..

마지막 순서인 듯..

그 애가 나온다.

 "이번 순서는 뭐죠?"

남자 진행자가 묻자.

 "네 이번은 [말하고 삽시다] 입니다"

평소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편지로 적어...

발표하는 코너였다. 

 "1학년 7반 김미혜양~ 3학년 4반 정종수 군이 보내는 편지 입니다"

 "난 널 처음 봤을 때 부터 사랑했어..
  오빠만 믿어. 
  졸업하고 꼭 데리러 올게
  ... 어쩌구 저쩌구"

장내에..

오~하는 함성과 함께..

시선을 집중 받은 한 여자애가..

얼굴을 가리며 밖으로 뛰어 나간다.
 
 "학생주임 이병권 선생님께 2학년 김모군이"

 "선생님 저번에 담치기 하다 결렸는데..
  그만 우발적으로 튀어 버렸습니다.
  운동 좀 하시고..
  배 좀 집어 넣으셔서..
  다음 번엔 꼭 잡아 보세용"
  
...이런 류의 시덥잖은 사연 이었지만..

학교 관계자들은 모두 배꼽을 잡고 웃는다.

 "다음은 마지막 입니다.. 소개해 주시죠"

남자 사회자가 멘트하자..

그 애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편지지 한장을 꺼낸다.

 "어? 이건 익명의 여학생으로 부터 온 거네요.."

고개를 갸우뚱 한다.

 "읽어 드리겠습니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천천히 읽어 내려간다.

 "선생님...
  그 동안 속 썩여서 죄송해요.
  이렇게 말 안듣고 제 멋대로인 녀석은 처음 이셨을 거예요.

  스스로도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 많지만..
  선생님만 보면 자꾸 어리광을 피우게 되는 저였습니다.
  
  비록 성적은 그다지 오르지 않았지만..
  선생님 덕분에..
  이렇게 밝고 명랑한 아이로 자랄 수 있게 되었답니다.
  정말..
  감사 드려요.."

녀석은..

거기까지 읽은 후..

침을 꿀꺽 삼기고.

약간 잠긴듯 한 목소리로..
 
 "잘 다녀 오세요.
  편지 자주 할게요
  꼬박 꼬박 답장 해 주세요

  그 말 알죠? 
  왜 제가 언젠가 말씀 드렸잖아요..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했던말.."

너는 언제까지나 네가 길들인 것에 책임이 있다.

  "그러니..
  앞으로도 저를 지켜 봐주세요.
  선생님이 자랑스러워 할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사람이 될게요.
  
  선생님..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길 바래요.."

편지지를 내려 놓고..

눈물이 찔끔 나는지..

손가락으로 눈가를 훔친다.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지만..

난  

코 끝이 찡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녀석..."

하고 고개를 숙이는데..

갑자기 

그 애의 말투가 돌변..
     
  "아 참! 까먹고 추신을 뺄 뻔 했네요"

뭐.. 뭐야-_-
 
 "혹시라도 
  귀찮아서 답장 안 보낼 생각 하고 계시다면
  아예 머리 속에서 지워 버리시는게 좋을 거예요

  선생님은 그 안에 계시지만
  
  사랑하는 진.이.씨.가 
  제 손.바.닥 안에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길 바래요.

  그 어리버리 한테는...참 험한 세상이예요.
  그쵸?" 

......-_-;;

이리하여..

끝..

그 동안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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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집일: 2003-12-19 8:08 pm (변경사항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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