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화면으로]나는왜일본에갔는가

마지막으로 [b]

나는 왜 일본에 갔는가

원문(?) : [진보누리]

대칸께서는 그토록 인자함을 베풀어 저들을 포용하려 하였으나 저들은 거만하게도 거절하였고 무례하게도 외면하였다. 급기야 섬나라 오랑캐들은 대칸의 사신 두세충과 하문저를 참하는 만행을 저질렀으니 이 어찌 천벌을 면하랴. 무릇 너희는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천병의 위의를 잃지 말라. 너희는 하늘을 대신함이요, 대의를 세우는 자라, 너희에게 황금의 땅 '지팡구'의 사금(沙金)이 마땅히 비처럼 내리리라."

남해 바다를 가득 메운 함대의 뱃머리마다 몽고 말과 고려 말, 그리고 한어(漢語)로 쩌렁쩌렁 울려 퍼졌던 독전(督戰)의 연설이었다. 며칠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배멀미에 기가 빠져 손에 쥔 창조차 들기 힘들어 뵈는 고려의 병사들 앞에서 나도 저 독전의 연설을 해야 했다. 물론 목이 메어 다 잇지 못하였지만.

나는 이때 '정일본도원수'였다. 수십년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의 마지막 기름방울을 짜낸 군대 1만명을 이끌고 대원제국의 군대에 묻어 일본을 치러 가는 길이었다. 내 이름을 묻지 말라. 장수로서 나라에 이로운 싸움에 공을 세운 것도 아니요, 재상으로 나라의 환난을 막지 못하였으니 그 이름 석 자를 내세울 일이 무엇이랴.

우리가 몽고에 무릎을 꿇은 지 2년도 지나지 않아, 쿠빌라이칸은 사신을 보냈다. 들고온 칙서의 내용은 그 몽고 사신을 일본으로 안내하라는 명령이었고, “파도와 바람이 험하고 높다 하여 거절치 말라, 일찍이 사귄 적이 없다는 이유로 변명치 말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본과의 통상을 주선하라는 요구가 아니었다. 일본이 복속을 자청하고 속국으로서의 예를 다하지 않는 이상, 일본을 치겠다는 의지였다. 결국 그 의지는 현실로 이루어졌다. 나는 1차 일본 원정에 참여했고 그것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는 보다 강력하고 수많은 병단을 지휘한 ‘정일본도원수’로 2차 원정을 준비해야 했던 것이다.

너희가 요즘 마산이라고 부르는 땅, 합포의 모래사장에서 병사들 사열이 끝난 뒤 백발이 허연 졸병 하나가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로 나에게 물었다. “장군님, 우리가 일본넘들하고 와 또 싸워야 하능기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묵묵히 병사의 탈을 쓴 노인의 얼굴을 지켜보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 “저 지난 번에도 일본에 갔었십니더. 대마도에 줄줄이 내걸린 모가지들 중에 내 아는 사람도 많았십니더. 고기잡다 보몬 자주 만나지예. 목은 몽고군이 베고 그 목 거는 거는 우리가 했십니더. 미치겄대예. 그 목 가족들이 통곡을 하는데, 한 얼나가 우리보고 소리를 지르대예... 고려놈들, 요쯔니 시데 즈가와스죠. 토막을 내 주겠다..... 몽고군만 가도 충분할 낀데 와 우리를 굳이 데불고 갈라 카는 겁니꺼? 우리하고 일본하고 무신 웬수가 졌다고........”

몽고가 일으키고, 몽고가 주도하며, 몽고에게 이익이 되는 전쟁에 우리가 왜 피를 쏟고 뼈를 깎아야 하는가. 고기잡이 나가면 순박하게 어울리고 심심치 않게 친구도 되는 이웃 나라 일본에 왜 우리가 창을 겨눠야 하는가. 그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남의 전쟁에 들러리를 서는 군대의 장수만큼이나 참혹한 자리가 또 있을까. 그리고 그 들러리의 선봉에서 죽어가야 할 병졸의 목숨만큼 하염없는 것이 또 있을까.

2차 원정은 1차보다도 더 참혹하게 끝났다. 태풍 속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함대와 깨어진 판자들과 함께 바닷속으로 쓸려 들어가는 고려 병사들을 보며 나는 울었다. 고막을 찢는 바람 속에서 해안에 빈틈없이 늘어선 일본군의 함성이 들려 왔다. “가미가제! 가미가제!” 저들 말에 따르면 신이 보낸 바람이라는데 그 바람은 몽고군과 고려군을 분간하지 않았다. 아마 저들의 신에게는 자신의 땅을 침범한 것이 몽고군이고 고려군이고 가릴 것이 없었으리라. 누가 주도적으로 침략했고 누가 협박에 못이겨 그에 묻어 왔고, 일본을 적으로 생각하는지 아니하는지를 찬찬히 살펴 주지는 아니하였으리라. 그리고 그 신의 바람을 찬양하고 있는 저 일본군 병사들도 그러하리라. 내 귀에도 어렴풋이 저들의 절규가 들려 왔다. “요쯔니 시데 즈가와스죠.” 토막을 내 주겠다........

실제로 사로잡힌 고려군이 토막이 나 불태워진 채 그 숯덩이만 돌아온 적이 있었다. 부하 장수들은 격노했고 병사들을 시켜 일본 백성 백 명을 그리 하자고 나를 채근했다. 그때 나는 부하 장수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일본이 미워서 왔느냐?” “그러하지 않은데 이리 하니 참기 어려운 것 아닙니까?” “너희는 우리가 몽고와 싸울 때 일본이 그 요구에 못이겨 경상도에 상륙했다면 어찌할 것이냐? 그들을 이해할 것이냐?” “...........”

우리는 산산조각났다. 1만명의 고려 병사 중 8천명이 수장당했고 함대의 대부분은 그대로 관뚜껑이 되어 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몹쓸 것이 전쟁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남의 전쟁에 화살받이가 되는 일일 것이다. 차라리 몽고와의 항전 와중에 토막이 나 죽었더라면, 그것은 내 가족과 내 땅을 지키는 일이었기에 한 많은 죽음이긴 하나 그 죽음에 이유가 없지는 않을 터, 도대체 가미가제의 먹이가 된 우리 병사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죽었더란 말이냐.

후손들이여. 역사를 통틀어 강대국의 심리는 같다. 모름지기 강대국이란 전쟁으로 큰 나라, 전쟁이 없으면 그들은 무슨 명분으로든 끊임없이 전쟁을 만들어낸다. 달리지 않으면 넘어지는 외다리 수레처럼, 그들은 안에서건 밖에서건 적을 만들어낸다. 그 적이 크건 왜소하건 관계치 않고 그를 칠 명분을 만들어 내고 환상을 퍼뜨린다. 달갑지 않은 사신을 뻔질나게 보내고, 상대방의 도발적 행동을 유발시킨다.

훗날 마르코 폴로라는 색목인이 지팡구(일본)에 대해 기술한 것을 보면 쿠빌라이가 일본이라는 작은 나라에 대해 유포시킨 착각의 정도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으리라. 바로 너희가 사대하는 나라 미국이 하는 일도 그와 같았으리라. 지팡구에는 황금이 넘쳐 흐른다고 우겼듯, 이라크에는 ‘대량살상무기’가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외교 사신을 죽일만큼 야만적이었던 일본 조정처럼, 천하에 다시 없는 악당이 이라크에 있었던 것이다.

정일본도원수라는 재갈과 기미같은 관직명으로서 너희에게 묻는다. 또 그 장단에 춤을 추고 싶으냐....... 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을 그렇게도 끔찍하게 되풀이하려느냐.

너희 중에 이렇게 말할 자 있으리라.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당신도 결국 일본에 가지 않았느냐고, 우리도 아직 힘이 없어 어쩔 수 없노라고...... 후손들이여. 강한 자들의 특성을 너희가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들은 절대로 혼자서는 힘을 쓰려 들지 않는다. 명분상, 실리상 항상 ‘동맹국’을 필요로 하고 원치 않는 동맹을 만들어 낸다. 그들은 언제나 다양한 깃발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자신들의 명분을 세워 주는 탓이다. 너희가 사대하는 나라 미국 역시 언제나 ‘More Flag'를 내세우지 않았더냐. 그리고 그 명분은 항상 약소한 이웃에게 ’어쩔 수 없음‘으로 다가선다. 그러나 어쩔 수 없기까지 어떤 노력을 하였느냐의 질문에 너희는 어느 정도의 자신이 있느냐. 또 나에게 반문할 요량이겠지. “당신들은 어찌했는데?”

우리 대에 이장용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그가 쿠빌라이칸 앞에 갔을 때의 일을 나는 잊지 못한다. 쿠빌라이는 영녕군 준이라는 고려 왕족이 귀띔해 준 대로, 고려에 5만이라는 병력이 있으니 4만을 내라고 윽박질렀다. 그때 일흔에 가까운 재상 이장용은 이렇게 답했다. “30년 전란으로 인해 다 죽어서 없어졌습니다.” 이것은 도전이었다. 적어도 대원제국 황제 쿠빌라이칸의 병력 요구에 이렇게 답할 자는 하늘 아래 없었으리라. 쿠빌라이칸도 기가 막혔다. “너희 나라에는 여자가 없느냐? 죽은 자는 있고 태어난 자가 없다?” 쿠빌라이의 호통이 떨어지자 억센 몽고의 무장들도 어깨를 움츠렸다. 그때 이장용 재상이 쿠빌라이에게 내던진 말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나같이 칼 쓰는 무장들보다 붓으로 평생을 보낸 문신이 더 용감할 수도 있음을 처음으로 알았기에.

“성은을 입어 (즉 몽고와의 전쟁이 끝나) 9년 동안 전쟁이 없었습니다. 그때 태어난 아이들이래봐야 이제 9살, 폐하의 군인으로 쓸 수가 없습니다.”

누가 보아도 억지였다. 하지만 천하의 쿠빌라이도 그 억지를 반박할 수는 없었다. 그 억지는 하나의 절규였던 것이다. 너희가 이렇게 우리를 초토화시켜 놓고 무얼 더 요구한단 말인가?라는 피울음을, 그 억지를 통해 전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 아래 모든 땅덩이의 주인, 우리에게 기름을 바치라면 맷돌에 몸을 끼워서라도 기름을 짜내야 하는 절대권력자 쿠빌라이 앞에서 말이다. 쿠빌라이는 혀를 차면서 이야기했다. “과히 아만 메루겐이로다.... (말의 명수로다)”

후손들이여. 너희가 사대하는 나라의 힘도 내 모르지 않는다. 어쩌면 대원제국의 위세에 비길 정도로 그 깃발이 창성하리라. 하지만 너희가 지금 우리 대와 같은 처지이더냐. 우리처럼 몽고의 발길질 한 번에 파들파들 떨며 바짝 엎드려야 하는 비참한 처지에 불과하더냐. 남들 다 빠지려는 전쟁판에 굳이 끼어들어 충성을 입증해야 하는 구차한 상황이더냐. 아니지 않느냐. 적어도 너희는 우리의 처지에 비하면 백 배 천 배 나은 세월에 살고 있지 않더냐. 그 세월 속에서 너희는 너희 시대의 쿠빌라이칸에게 어떤 반론을 펴며 어떤 저항을 했더냐?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아만 메루겐’은커녕 ‘Easy Man'이라는 말을 듣고 다니며,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말을 그리고 속절없이 입에 달고 사는 것이냐.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이 있다. 나 자신 고려의 관직에 있던 양반이요, 왕실에 충성을 다하는 장군으로서 할 말은 아니다만, 일본 원정은 결코 백성들을 몽고의 침략에서 모면해 보려는 충정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고려를 지배하던 세력의 안전을 위한 것이었고, 나를 포함한 그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몽고에 기대고자 했던 것이다. 몽고의 사위가 되든, 변발을 하든, 호복을 입든...... 더욱 더 원통한 것은 그 요구에 동조하고, 되레 앞장서려고 했던 고려인, 그것도 왕족과 귀족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쿠빌라이가 자신만만하게 군사 4만의 수를 입에 올린 것은 영녕군 준이라는 정신 나간 작자가 고려에 군대 5만쯤은 넉넉히 있다고 호언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작자들일수록 쿠빌라이칸의 ‘은혜’를 입에 담았다. 수십 년 몽고의 침략을 종식시켜 준 것이 누구냐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처럼 먼지도 남지 않게 사라지지 않고 고려의 종묘사직을 유지케 하여 준 것이 누구냐는 것이다. 은혜.... 끔찍할이만큼 고마운 은혜.

후손들 가운데 힘있는 자들이여. 지위있는 자들이여. 가진 것 많은 자들이여. 너희는 무슨 은혜를 갚으려느냐? 무슨 놈의 '국제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느냐? 그리고 솔직히 대답하라. 너희가 말하는 이익이란 도대체 누구의 이익이며 그 이익을 지키기 위해 죽어갈 장정들은 누구의 자식들인가를. 그리고 그 장정들이 누군가의 손에 토막이 나고 불태워진다면, 너희는 대체 누구에게 그 분노를 폭발시킬 것인가를.

가미가제의 독수를 가까스로 피해 다시 고려 땅을 밟았을 때 나는 모래밭에서 통곡했다. 우리가 왜 일본하고 싸워야 하느냐고 물었던 노병은 내 눈 앞에서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우리 병사를 토막내고 불태운 일본인에게 복수하자고 치를 떨던 부장은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가죽이 벗겨졌다. 저 죽음들을 누구에게 물을 것이냐. 일본 원정을 충동질 아니면 동참한 댓가로, 또 필사적인 자구책의 일환으로 몽고의 사위국이 되어 국체를 유지하며, 호의호식을 놓치지 않을 왕실과 권문세가에 물을 것이냐. 천병의 문책과 우리의 진의를 무시한 채 우리 병사들을 그토록 잔인하게 살해한 일본에 물을 것이냐. 그리고 우리가 죽인 그 숱한 목숨들은 대체 누구에게 물을 것이냐.

참담하게 당부하노니..... 다시는 나같은 불행한 군인이 없기를 바란다. 이것은 너희가 잘 아는 선글라스 낀 작달막한 장군이 전역식에서 내뱉는 맘에 없는 소리가 아니다. 진실로 나는 너희들이 나와 내 병사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이장용 재상의 노력이 너희 대에 빛을 발하여 뭇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너희는 우리와는 다르지 않느냐. 너희가 왜 우리를 따르려 하느냐. 왜 애매한 사람을 적과 적으로 만드는 남의 전쟁에 기를 쓰고 가려고 하느냐.

얼마 전 나는 너희가 배우는 국사 교과서를 보고 격노했었다. ‘여원연합군의 일본 정벌’ 나는 괴성을 지르며 그 책을 집어 던졌다. 역사 왜곡을 한다는 중국과 일본에 핏대 세우는 것은 좋다만, 이런 말도 안되는 짓도 제발 삼가라. 그것이 무슨 연합군이냐. 나는 몽고의 괴뢰군이었을 뿐이다. 몽고의 손에 줄이 매달린 채 눈물 흘리며 연기하는 꼭두각시였을 뿐이다. 너희가 조직한다는 ‘연합군’도 크게 벗어날 성 싶지는 않구나. 나는 그것이 슬퍼 다시 눈물을 떨어뜨린다. 먼 훗날 ‘한미 연합군의 이라크 재건’이라는 교과서 구절을 저승에서 보고 그걸 찢어발길 자이툰 부대원도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려 정일본도원수... 부끄러운 이름 김방경이 말한다. 전쟁에 참여한다는 것은 지옥에 발을 디딘다는 것이다. 과연 너희는 그만한 가치를 발견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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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집일: 2004-4-20 6:35 pm (변경사항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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