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화면으로]우리는소수에게얼마나인간적인가

마지막으로 [b]

"우리는 소수에게 얼마나 인간적인가"

원문보기: [프레시안]

주류에 진입하지 못하고 소수로 사는 사람들은 삶이 참 고달프다.

인니(인도네시아) 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나같은 외국인의 경우도 그렇지만, 몇대에 걸쳐 살며 인니 국적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는 자신들의 조상의 언어인 중국어마저도 잊어 버린 중국계 인니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인니의 중국계는 전체인구의 3%가 조금 안된다. 그런 중국계가 이나라 경제의 75%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그야말로 중국계가 이 나라 경제를 좌우한다 할 만큼 이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러나 이들 중국계가 항상 이나라(인니)에서 마음 편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니다. 정치가 조금만 불안하고 소요사태가 심각해지면 이들은 불안하기 그지 없다. 종교적,인종적으로 주류 인니인과 확연하게 차이나는 이들 중국계는 소요때면 항상 주된 공격목표가 된다. 이들이 대수인 인니인들보다 잘 사는 데 대한 불만에다가 정치인들의 정치적음모 (마치 우리나라 정치인의 그놈의 지역연고주의와 학연주의같은 더러운 짓거리를 여기의 정치인들이라고 해서 이용 안할리 있겠나?)까지 가세해 집이 불태워지고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요컨대 돈이 있다고 부자로 산다고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닌 것이다. 그나마 부자들은 사태가 심각해지면 싱가포르나 말레이지나로 잠시 도피했다 진정되면 들어오기라도 하지만, 모든 중국계가 다 부자는 아니니 가난한 중국계는 그대로 당하는 방법말고는 별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이들이 다른 나라로 떠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의 생활의 터전이 여기에 있어 다른 나라에 가면 현재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이민이라는 것 자체도 쉽지가 않다. 중국계이지만 어쨌거나 이들의 국적은 인니이고 그러다보니 이민을 받아주는 나라에서는 이들을 중국계가 아닌 인니인으로 취급해 쉽게 이민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불안하지만 심각한 정도가 아니면 이들은 여기에 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에 돌아간다고 해도 이들이 '성공한 중국인'이라고 환영을 받는 것도 아니다.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그 조상이 복건성 출신이라 중국 표준어인 북경어가 서투르다. 구사해도 본토의 중국인만큼 구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재일동포나 재미동포의 2,3세 들이 한국어가 서투른 것처럼 이들의 중국어는 따로 교습의 받아야 한다.

언젠가 나의 중국계 사업 파트너가 내게 넋두리하듯 한 말이 있다.

“ 우리는 어디에서나 이방인으로 산다. 여기선 중국계라고 배척한다. 중국에서는 인니인이라고 따돌린다. 말련이나 싱가포르의 중국계조차도 우릴 한수 아래로 본다. 어찌보면 우린 무국적자나 다름 없는 사람들이다.”

이 말을 한 중국계 인니인은 그래도 싱가포르의 예금계좌에 충분한 달러잔고가 있고, 뭐 재벌까지는 아니라도 꽤 상류계층에 속해있는 사람이다.

우리나라 신문에 미국이민 100년을 기념해 미국주류사회에 진입해 성공한 한국인의 얘기도 나오고 또 인종차별에 힘들어 하는 얘기도 나온다. 이같은 고달픔이 어디 재미동포들 뿐이겠나? 재일동포, 재러동포, 재중동포도 힘들기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우린 우리나라(한국)에서 소수로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얼마나 배려하고 있을까? 노숙자, 장애자,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혼혈,동성연애자 그리고 기타의 소외된 사람들….

내 선배 하나는 뇌성마비를 앓아 걷는 것이 무척 힘들다. 말도 찬찬히 듣지 않으면 알아듣기 힘들다. 그는 고등학교까지 한국에서 마치고. 대학2년 재학중에 장애인단체의 지원으로 파리에 유학을 다녀왔다, 그가 한국으로 돌아와 생활하면서 가장 힘든일은 월급이 적다거나 업무가 힘들다거나가 아니라 뒤에서 그에게 손가락질 하며 던지는 한 마디 “병신XX” 라는 말을 견디는 일이라고 내게 말한 기억이 난다.

그는 한국에서 정규교육을 받아 대학에 정상적으로 입학했고(그가 대학에 입학할때는 장애인 특별전형따위는 없었다), 학비뿐인 장학금이지만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했고, 수료증인 아닌 논문이 통과되어 졸업증을 쥐고 한국에 돌아왔다.

이 정도면 그의 다른 사람보다 우수한 지능을 가졌다고 하기엔 뭣하지만 남보다 떨어지는 지능이나 지성을 가진 사람이 아님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개인적인 평가일뿐 아직도 그에겐 언제나 ‘장애인’ 이라는 딱지가 늘 따라 다닌다.

다른 사람들이 그와 대화할 때 그저 좀더 찬찬히 들어주기만 한다면 그와의 대화엔 별 문제가 없다.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 그리 힘든 일만은 아닐텐데, 많은 사람들은 그걸 귀찮아 한다.

물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한때는 그와 함께 다니는 것이 창피하기도 했다. 남의 곱지 않은 시선이 나를 불편하게 했기 때문에…. 돌이켜 보면 정말 어리석고 비겁한 생각이었지만 그때는 그랳다.

그는 가파른 계단을 힘들게 오르는 것에 대해, 버스가 자신을 기다려 주지 않고 출발해 버리는 것에 대해, 한마디의 불평도 해본 적이 없다. 그는 특별한 대우를 요구해본 적이 없다.

단지 공평하게 대해 달랄 뿐이었다.

내가 지난번 인니인들에 대한 한국정부의 비자면제취소조치에 대한 글을 프레시안에 싣고난 후 의견란에 어떤분이 “그것이 뭐가 잘못이며, 우린 아쉬울 것이 없다” 라는 투의 글을 올리셨다. 그의 말도 맞다. 까짓것 인니가 그렇게 나온다고 당장 우리에게 피해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이 강자의 논리에 의해 주도된다고 해서 강자의 논리가 강요되는 현실이 옳은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밀림에서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내 의견을 한 예로 대신 해 볼까 한다.

작년에 멕시코의 교민부부가 가짜상표를 붙여 옷을 만들다가 멕시코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때 함께 체포된 부인이 멕시코경찰에 의해 발가벗겨져 사진이 찍혔다고 해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던 것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이다. 이런 멕시코 경찰의 행동이 과연 옳은 것일까? 물론 가짜상표를 붙여 파는 것은 법률 위반이다. 그렇다고 경찰이 피의자를 벌가 벗기는 행위가 정당화 될까?

또하나, 로버트 김은 미국시민으로 한국정부에 미국정부의 내부정보를 제공한 협의로 반역범이되어 투옥 되었다. 그가 미국시민이므로 우리가 그를 잊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 옳은가?

위의 두가지 경우에 대해 우리나라 외교당국자는 왜 능동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나? 멕시코의 그 일은 몇달이 지금, 다른 외교적 사안들처럼 흐지부지되어 우리의 기억속에서 사라져가고 있고, 로버트 김은 이직도 미국의 감옥에 있다.

지난번 신효순.심미선을 죽게 한 미군의 장갑차량사고에 대한 의견 중 다음과 같은 한분의 의견이 기억난다. "우리가 힘이 없기 때문이다. 국력을 키우자.” 그에 대한 답글 중에 “ 힘이 없는 나라는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말이냐? 그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 만일 약자에 대한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행동이 용납된다면 우린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것을 잃는 것이다”라는 글이 있었다.

난 후자의 말에 더 공감한다. 우리가 아쉬운 게 없으니 내마음 내키는 데로 하겠다면, 자신의 멋대로 자기의 정책을 밀어 부치는 미국정부에게 우린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미 대사관 앞의 촛불시위에 대해 “ 정신 나간 놈들 고마운 줄도 모르고…”라고 떠들어 대는 미국의 보수 언론에 대해 우린 무슨 말로 비난할 수 있을까?

"너희도 우리랑 똑같잖아?, 너희들도 인니,파키스탄, 인도인 알기를 발톱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잖아? 그리고 자국민인 한국의 장애자에게조차도 불공평하게 대하잖아? 너희나라에서는 혼혈인은 한국국적 이라도 차별받잖아? 해외동포를 위해선 아무것도 안하잖아? 중국에서 사형당한 한국인 범죄자 그리고 심지어는 중국경찰에게 얻어 맞는 외교관에 대해서도 침묵했잖아? 북한을 탈출해 도움을 청하는 북한인들을 너희는 귀찮아 하잖아? 그런데 우리가 그러는 건 왜 안되는 건데?”

이렇게 묻는 그들에게 뭐라 대답할 텐가?

우리의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인 정책이 계속된다면 동남아시아의 모든 국가를 적으로 만들게 된다. 그 다음엔 전세계를 상대로 싸워야 한다. 지금은 흥선군의 쇄국정책을 따라 하기는 불가능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우린 세계 경제를 주도할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힘도 부족하다. 설사 우리의 경제력,군사력이 세계 최강이라 해도 약자에 대한 일방적인 정책은 그 정당성은 인정 받을 수 없다.

미국의 정책은 아시아에서 중국과 한국에게서 신뢰를 잃어가고 있고, 유럽에서는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실수를 옆에서 보면서도 우리가 그대로 따라한다면 우린 과연 어떤 인간일까? 덩치만 커다란 공룡일까?

난 우리 정부의 외교정책이 좀 더 인간적이길 바란다. 그럴려면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이 사회적 소수인 사람들에게 좀 더 배려하고 따뜻해야 한다. 훌륭한 시민들만이 올바른 정부를 만들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민이 변해야 정부도 변한다, 시민이 정부의 행위를 조정하지 않고 방치하는 데 정부가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기태형/해외 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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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집일: 2003-3-28 4:47 pm (변경사항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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