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화면으로]세계화교육의첫걸음

마지막으로 [b]

세계화 교육의 첫걸음

[원문보기-한겨레신문] - 작성자가 누구인지 나와 있지 않은데, 예전 기사로 보건데 아마도 한비야씨인 듯.

내가 7년간의 세계일주를 마치고 내린 결론은 `세상은 정말 좁다!’였다. 지구 밖으로 단 한발짝도 나갈 수 없으니 정말 `튀어봐야 지구 안’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구호단체 긴급구호팀장인 나는 56시간 대기조다. 전쟁이나 지진 등 대형 재난이 나서 출동명령이 떨어지면, 56시간 안으로 현장에 가 있어야 한다. 그 시간 내에 세계 어느 구석이라도 갈 수 있으니 정해진 원칙일 게다. 이렇게 교통과 통신의 눈부신 발달로 이제 세상은 `지구촌’이 아니라 몇 개의 방으로 된 `지구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집에 살면 같이 사는 사람들과 크고 작은 일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마련이다. `지구집’에서 `우리 방’은 다른 방에 비해 물질적으로 풍요하다. 배부르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어 다행이다. 그런데 옆방에서 신음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해보자. 누군가 배가 고파서, 다치거나 아파서, 혹은 나쁜 놈이 괴롭혀서 고통스러워 하는데도 그 사람이 딴방에 있다고 나와 아무 상관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옆방에서 신음소리가 나는데 이쪽 방에서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고 멋진 음악을 들어도 즐거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신음소리를 왜 내는지 들여다보고, 우리가 할 수만 있다면 멈추게 해주어야 한다. 옆방 사람을 위해서인 것 같지만 결국은 우리 방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서다.

구호단체에 들어와보니 도와야 할 `옆방 사람’들이 훨씬 잘 보인다. 나는 이디오피아에 딸이 있다. 8살이고 이름은 제네부다. 2년 전 결연했는데 작년 출장길에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가족 4명이 동도 트지 않는 새벽에 3시간도 넘게 진흙길을 걸어왔다고 했다. 30대 부부는 나를 보자 덥썩 껴안고는 두 뺨을 맞대는 인사를 했는데, 그날 아침 나는 그 부부의 눈물로 세수를 했다. 사연인즉, 남편은 일용노동자인데 사고로 허리를 몹시 다쳤고, 부인 역시 해산을 하느라 입주 가정부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어 살길이 막막했단다. 하루 한끼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생활이라, 태어난 아이까지 영양실조와 설사로 시름시름 앓았단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 세상을 비관해 다 같이 죽을 결심을 하던 차에 나와 결연이 되었단다. 그리고 첫번째 후원금 2만원으로 갓난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살릴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그 후 정기적으로 오는 후원금 덕분으로 제네부는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부인은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했던 가정부 일을 그만두고 재봉틀을 배운다고 했다.

참 신기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피자 한판 값인 2만원이,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한 생명을 살리고, 흩어졌던 가족을 모으고, 지독한 가난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는 종잣돈이 된다는 사실이. 그리고 정말 기분이 좋았다. 이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한국에 돌아오는 즉시 초등학교 4, 6학년인 내 조카들에게 이디오피아 친구 한명을 연결해 주었다. 후원금 월 2만원은 아이들이 성의껏 모으고 모자라면 내가 보태주기로 했다. 아이들은 `사먹고 싶은 거 참느라 두 눈을 꼭 감고’ 저금한 돈 몇천원을 매달 모아온다. 친구사진을 받아보고는 더욱 신났다. 결연 후 아이들은 세계지도에서 수시로 이디오피아를 찾아본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이 나라 얘기가 나오면 어찌나 반가워하고 아는 척을 하는지. 결연 덕에 아이들은 아프리카를 아주 가깝게 느끼고 있다. 정말 옆 동네, 아니 옆방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새해에는 많은 아이들이 책상이나 거실 등 아주 잘 보이는 곳에 세계지도를 붙여놨으면 좋겠다. 그리고 저금통에 한푼, 두푼 동전을 모아 `옆방 아이들’을 돕는 일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나누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멋진 일인지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것이 세계화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크고 넓게 보는 것이 아니라 작고 좁게 보는 것, 세상은 경쟁이나 학습의 대상이 아니라 같이 살아야 할 이웃이고 서로 돌봐야할 친구로 여기는 것. 이것이 `지구집’ 시대를 사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영어나 컴퓨터보다 훨씬 중요하고 근본적인 세계화교육이 아니겠는가.


관련 링크:


스크랩분류

마지막 편집일: 2003-3-28 4:46 pm (변경사항 [d])
1340 hits | Permalink | 변경내역 보기 [h] | 페이지 소스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