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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파병때 잊었나

원문보기 : [한겨레신문]

이라크 파병안 통과로 한국은 또다시 국제분쟁에 휘말려들게 되었다. 불행한 일이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쟁 등 20세기 후반의 3대 전쟁에서 늘 주연 또는 주연급 조연으로 출연해온 한국은 21세기에도 미국이 일으킨 침략전쟁에 동참하게 됐다.

천진난만한 '국익' 기대

전쟁 장기화가 예상되고, 스페인이나 오스트레일리아처럼 파병을 공언했던 나라들마저도 머뭇거리는 상황에서 말이다. 미국을 제외하고 지구상의 모든 전쟁에 이렇게 깊이 개입한 나라는 한국 말고는 없다.

정부와 파병안 찬성 의원들은 우리가 이 전쟁에 공병 600여명과 의무요원 100여명을 파견함으로써 한미동맹을 굳건하게 만들고, 한미관계에서 한국의 발언권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북핵’ 문제를 둘러싼 북미갈등에서 미국의 군사력 사용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병이 파견돼 활동하면 전후 복구사업에서 한국기업들이 보다 많은 떡고물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한국이 700명을 파견한다고 세계전략 차원에서 결정될 미국의 군사력 사용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우리 정부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 천진난만한 일방적인 기대(wishful thinking)에 정신이 아찔해질 지경이다. 미국도 베트남전의 교훈을 배우지 못했지만, 우리 정부도 32만 대군을 파병했던 베트남전으로부터 아무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베트남에 파병하면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나토 수준의 방위조약으로 격상해 주한미군 주둔보장 등을 한국이 얻어낼 핵심과제로 설정했다. 그러나 한국의 파병 이후에도 상호방위조약 개정에 전혀 응하지 않았다. 당시 박 정권은 “베트남에 한국군을 안 보낼 수도 있지만, 그러면 미국은 휴전선 배치 미군을 베트남으로 보낼 것”이라는 논리로 부도덕한 전쟁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미국은 1971년 한국정부에 일방적인 통보(또는 사전협의)를 하고 주한미군 2만명을 베트남이 아닌 미국 본토로 철수시켰다. 공병 수백명이 아닌, 전투병 중심 32만명을 파병하고 얻은 결과다. 공병 수백명으로 북한에 대한 미국의 군사력 사용이나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해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너무 위험하고 오히려 우리의 ‘국익’을 해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순진한 발상이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미국이 한국 공병에 대한 적절한 보호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미국의 요구가 없더라도 현지 한국군 지휘관이 전투병력을 경계병으로 증파해 달라는 요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박 정권도 처음부터 32만 대군을 파병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건 아니었다.

위험한 도박 중단해야

정부는 또 국민의 혈세로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지원하면서 파견 군인들에게 현역 사병 봉급의 100배에 해당하는 230만원을 지급하고, 복무기간을 3개월 단축해 주겠다고 한다. 이는 하루 일당이 지하철표 한 장 값도 안되는 열악한 처지에서 묵묵히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대다수 사병들에 대한 모욕이며 부당한 차별이다.

전투병 중심으로 32만 대군을 파견하고도 이루지 못한 것보다 더 많은 일을 공병 수백명으로 이뤄보려는 위험한 도박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한홍구/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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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집일: 2003-4-4 6:44 am (변경사항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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