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보기-한겨레]
이인제씨가 자민련 입당과 동시에 총재권한대행에 임명되었다. 최근 들어 이보다 반가운 소식이 없었다. 뒤늦게나마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당을 찾았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당을 탈당한 뒤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 지지를 표명했던 안동선 의원까지 동반 입당했다니 그것도 기쁜 일이다. 아마도 다같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지지 쪽으로 마음을 모으는 모양인데 그것도 나쁠 것 없다. 국민들을 정신없게 했던 많은 정치인들을 한꺼번에 모아 자민련으로 갔더라면 더욱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그건 나의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이번 입당을 통해 이씨는 `신한국당 경선 참여-경선 불복 탈당-국민신당 창당과 대통령 선거 출마-선거 패배와 국민회의 입당-민주당 경선 참여-사실상의 경선 불복과 탈당’이라는 긴 여정을 끝내고 자신의 표현대로 “고향으로 돌아간” 셈이 되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간 것을 내가 기뻐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이제 더 이상 국민들이 그를 보고 헷갈릴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민주화 투사 흉내를 내다가, 김영삼씨의 후계자가 되려 했고, 한동안은 박정희씨 흉내도 내다가, 결국은 일부 언론의 지지를 업고 김대중 대통령의 후계자가 되려 했던 사람, 그래서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늘 의구심을 갖게 했던 사람이 이제야 김종필씨의 후계자로 고향을 찾았으니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그는 아마도 우리 역사상 세 김씨 모두의 후계자를 꿈꿔 본, 보기 드문 정치인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그동안 “부패한 패권추구세력”들로 뭉쳐진 당에서 마음고생도 많이 했을 테니 이제는 자민련에서 푹 쉬면서 정국 구상이나 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애초에 “부패세력과 급진과격세력이 집권연장을 기도”하는 당에는 왜 갔는지, 왜 그런 한심한 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려 했는지, 그 당을 개혁하려고 지난 4년간 무슨 일을 했는지는 묻지 않기로 한다. 국민회의에 입당하면서 “개혁의 성공을 돕는 것이 정치적 정도(正道)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던 것이 어디 갔는지도 묻고 싶지 않다. 어차피 `정도’라는 단어가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까닭이다. 굳이 내 작은 소망 하나를 밝힌다면 불복과 분열의 행태를 반복해 온 그가 `지금까지 해온 그대로’ 자민련에서도 잘해주기 바란다는 것인데, 자민련에 대한 지나친 악담이 될까 두렵다.
지난주 <오마이뉴스>는 김민석씨와의 인터뷰를 실었다. 요즘 인터넷에서 `김민새’라는 별칭을 얻고 있는 그의 변명들을 끝까지 읽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의 노력과 헌신 때문에 후보단일화를 이룬 것 아니냐고 강조하고 싶은 듯 했다. 정몽준씨를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선거에서 수월하리라 판단했다”는 승리지상주의 이외에 아무런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그는 거듭하여 후보단일화의 당위성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이러다가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대선 승리의 공로는 후보단일화를 위해 몸 바친 나 김민석에게 있다”고 큰소리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그의 이런 태도는 광주 경선에 나서던 이인제씨 측이 “김대중 대통령 당선에 이인제가 기여했으니 그 은혜를 갚아 달라”고 주장했던 일만큼이나 황당한 것이다. 이인제씨는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을 돕기 위해 출마했던 것이 아니었다. 김씨가 민주당을 탈당했던 것도 단순한 `후보단일화’가 아니라 `정몽준으로의 후보단일화’를 위한 것이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은 정치인의 자유지만,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표로 심판하는 것은 유권자의 권리다.
김씨도 이제 자신의 “고향”인 영등포로 돌아가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했다. 영민한 그답게 지역구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재기의 유일한 길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궤변을 듣는 것이 지겹다. 고향 찾은 철새들에게 살길을 열어주는 고향 사람들의 인정도 더 이상 훈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철새 없는 정치판을 기대하는 것은 나만의 헛된 꿈인가
김두식/ 변호사·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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