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남아 있는 힌두교의 차별에 반대해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인도 불가촉천민의 항변
많은 사람들이 인도를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카스트 제도는 3천년의 유구한 역사가 있다. 흔히 알려진 대로, 카스트 제도는 브라만·크샤트리야·바이샤·수드라의 네 계급으로 구성된다. 그러면 말 그대로 접촉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의미의 불가촉천민(Untouchable)은 어디에 포함될까 그들은 카스트에도 들 수 없는, 그 바깥의 존재들이다.
법적으로는 차별이 없어졌으나…
이렇듯 그들은 인간사회의 한 부분이 아니라 그 아래 있는 무엇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가장 비천하다고 여기는 직업에 종사해왔다. 오물 수거, 시체 처리, 가죽 가공, 세탁, 도기 제조 등이 주로 그들의 몫이었다. 카스트 힌두는 그들과 접촉하거나 심지어는 그림자가 스치기만 해도 오염된다고 생각했다. 일부 남부지방에서는 그들을 보기만 해도 오염된다고 생각했기에 불가촉천민은 밤에만 활동해야 했다. 또한 그들에겐 사원 출입이 금지되고, 마을 공동우물의 물을 긷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으며, 신발을 신을 수도 없었고, 버스나 기차에 빈자리가 있어도 앉을 수 없었다. 이러한 극단적 차별은 19세기 말까지 성행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불가촉천민의 인권운동과 카스트 철폐운동이 시작되었다. 1930년대 마하트마 간디는 그들에게 신의 자녀라는 의미의 하리잔(Harijan)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이름에 숨어 있는 동정적 의미에 반발하며 스스로를 핍박받는 자라는 뜻의 달리트(dalit)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오늘날 달리트는 불가촉천민의 대표적 명칭이 되었다.
인도 정부는 1955년 불가촉천민제 범죄법(Untouchability Offenses Act)을 제정했다. 불가촉천민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사람을 처벌하겠다는 법이다. 또한 89년에는 지정카스트와 지정부족민법을 제정했다. 이는 법적으로 불가촉천민과 일부 하위 카스트를 지정카스트와 지정부족민 등으로 규정하고, 불가촉천민 신분제도를 불법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이들에게 특별한 교육혜택과 직업상의 혜택이 주어졌으며, 의회에서도 특별한 대표권이 부여되었다. 공무원 시험에서도 그들을 위한 배정이 있으며, 대학에서도 일정비율의 신입생은 그들 가운데 선발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제도들이 모든 달리트의 지위를 향상시킨 것은 아니다. 인도 내 2억4천여만명 달리트 가운데 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그들끼리의 경쟁을 통과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비불가촉천민의 분노와 질시도 만만치 않다. 예컨대 대학 안에서 불가촉천민 출신 학생들은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하는 고충을 토로하지만, 비불가촉천민 출신 학생들은 수준 미달의 학생들이 혜택을 입고 입학해 학교의 질을 떨어뜨렸다고 비난한다.
경찰마저 침묵하는 현실
달리트에 대한 차별이 아직 생활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최근 자주 일어난다. 라자스탄주에서는 한 달리트가 의례를 드리기 위해 마을의 우물을 사용하려고 하자 상위계급이 그것을 금지하고 마을 전체에 벌금을 부과했다. 벌금 납부를 거부하자 상위계급은 그들에게 물건을 팔지 않거나 일거리를 맡기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고립시켰다. 이에 항의해 달리트는 마을에서 사원의 우물까지 행진을 시도했으나 몰려온 2만여명의 상위계급에 의해 폭동이 일어났고 행진은 봉쇄당했다. 현재 그 마을의 달리트는 경찰의 경호 아래 우물에서 의례를 드리고, 상위계급은 그 우물을 사용하는 것을 중단해버렸다.
타밀나두주의 농장 노동자인 한 달리트는 오줌을 먹도록 강요당했다. 카스트 힌두가 그의 땅을 침범한 것에 대해 진정서를 경찰에 제출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또 다른 달리트는 어렸을 때부터 마을 지주의 땅에서 일해왔다. 그는 약 15년 전에 지주가 임금에서 매달 500루피씩 공제하는 조건으로 땅을 지급한다고 했으나 한평의 땅도 받지 못하고 농장에서 해고되었다. 그가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을 준비하는 동안 지주는 문제의 땅을 팔아버렸다. 그 땅의 새 주인은 그와 가족을 때렸고, 그는 경찰에 사건을 신고했다. 다음날, 경찰관리가 포함된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온 새 주인은 그를 폭행하고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은 그의 머리채를 잡고 그의 입에다 오줌까지 누었다.
또한 하리야나주의 다섯명의 달리트는 소의 가죽을 벗겼다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그러나 그 소는 이미 죽은 소였고 그들은 소의 가죽으로 제품을 만드는 직업을 가진 달리트들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자세한 정황을 알아보지도 않은 채 그들을 경찰서로 끌고 갔다. 극우힌두단체인 비슈바 힌두단체의 단원들이 몰려와 그들을 바깥으로 끌어낸 뒤 집단구타해 결국 죽였다. 경찰은 비슈바 힌두단체의 협박에 굴복에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에 마지막 사건의 희생자 가족은 최근 개종식을 열었다. 그들은 죽은 소에 가치를 부여하는 그런 종교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다고 하며 불교·이슬람·기독교 등으로 개종했다. 아무리 인도 법률이 만인의 평등을 주장하고 불가촉천민 제도가 불법임을 언급해도 카스트 힌두의 의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에 달리트는 힌두교를 버리는 것만이 자신들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56년 인도 독립정부의 초대 법무장관인 달리트 출신의 암베드카르 박사가 20만명의 달리트를 이끌고 불교로 개종한 것이 그 시발점이었다. 지난해 11월, 델리에서는 약 5만명의 달리트가 불교로 개종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런 집단적 개종보다 소규모의 개종이 더 자주 이루지는 추세다. 여러 종교 가운데 불교로의 개종이 가장 많은데, 그것은 인도에서 일어난 종교라는 점에서 다른 종교보다 거부감이 작기 때문이라는 것이 불가촉천민의 설명이다.
정부마저 개종 탄압해
이렇듯 개종이 잦아지자 남인도의 타밀나두주는 개종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해 많은 반발을 사고 있다. 이것은 상위계급이 달리트를 자신들의 사회 속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으면서 그들이 힌두교의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는 것을 얼마나 못마땅하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그 법안은 형식적으로는 강제적이거나, 사기성이 있거나, 정당하지 않은 동기 때문에 개종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밝혔으나 많은 사람들은 기준의 애매모호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경찰 또한 모든 개종행사를 봉쇄하고, 이슬람 율법학자인 몰비들이 지역 당국에 통고 없이 주민들을 개종시키면 구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힌두민족주의를 표방하는 현 집권당인 국민당(BJP)의 당수 벤카이아 나이두는 타밀나두주뿐 아니라 인도의 모든 주가 반드시 반개종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BJP의 구자라트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그는 구자라트에 대한 BJP의 공약에는 개종반대 법안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오랫동안 개종을 금지하기 위해 당국의 개입을 요구해온 비슈바 힌두 단체 역시 희색을 표했음은 물론이다.
현재 타밀나두는 많은 수의 불가촉천민이 이슬람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개종행사를 준비하고 있어 경찰과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고 만약 이슬람이 되는 것이 우리에게 존엄성을 줄 수 있다면 우리는 감옥에 가더라도 개종할 것이다.” 한 젊은 달리트는 이렇게 말했다.
한편 최근 개종한 불가촉천민은 한 방송사와 인터뷰에서 “개종한다고 해서 우리들의 삶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상위 카스트는 예전과 변함없이 우리들을 대한다. 우리가 교육받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해 힌두 사회의 굴레를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그들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
델리=글·사진 우명주 전문위원 greeni@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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