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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에 핏방울 떨어지네

원문: [한겨레21] - 로그인 필요


<무인시대>와 <야인시대>의 폭력적 영웅 만들기… 도끼와 칼, 주먹 등이 지배하는 ‘역사’ 드라마

한국방송 대하드라마 <무인시대>의 한 장면. 이고가 휘두른 쌍칼에 문신들이 우수수 쓰러지고 이의민이 던진 도끼는 한 병사의 머리에 내리꽂힌다. 이의방은 철퇴로 환관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치더니 피 묻은 수급을 내던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변을 일으킨 무신들은 문신 가족들을 어린아이까지 잔인하게 참살하는가 하면 자신들에게 맞서는 자들에게는 가차없이 무력을 행사한다. 말 그대로 참혹한 살육의 현장이다. 그 와중에 이의방의 쩌렁쩌렁한 포효가 이어진다. “문신의 관을 쓴 놈들은 서리라 할지라도 단 한놈도 살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내 손으로 그놈들의 씨를 말릴 것이야!”

영웅신화로 폭력에 정당성 안긴다


사진/ 고려 무신정권을 재조명하는 한국방송 대하드라마 <무인시대>는 폭력적 장면으로 극을 이어가고 있다.


이 장면이 방송되고 난 뒤 시청자 게시판에는 시청자들의 항의가 줄을 이었다. “가족들이 함께 보기에 너무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무인시대>는 15세 등급 아니었나. 19세 등급으로 올려야 할 것 같다”. 이 같은 항의에 제작진은 “주인공들의 포악한 캐릭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전쟁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서였다”며 “앞으로 폭력적인 장면들은 청소년 보호시간대를 피해 10시 이후에 방송되도록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폭력성은 등급 선정에 중요한 척도가 된다. 폭력적인 장면들이 아이들에게 끼칠 악영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는 늘 존재했고, 그 도덕적 권위에 힘입어 험악한 검열의 폭력이 뒤를 잇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그래서일까, 일부 시청자들은 “어차피 <무인시대>는 청장년층이 많이 보는 드라마니 선정성·폭력성에 개의치 않아도 된다. 전투신의 화려한 스펙터클을 마음껏 보여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영화 <넘버3>에서 “죄가 무슨 죄가 있어, 죄지은 인간이 나쁜 놈이지”라고 외치던 열혈 검사의 말을 빌리면 이런 ‘설법’이 가능할지 모른다. “폭력이 무슨 죄가 있어. 폭력을 이렇게 저렇게 이용해 먹는 인간이 나쁜 놈이지!” 문제는 폭력에서 정당성을 얻는 영웅신화가 만들어내고 전파하는 이데올로기 효과다.

애초 <무인시대>의 기획의도는 왜곡되어 있던 무신정권을 재조명하는 것이었다. 고려시대 활약한 무신들에 대한 기록은 조선 성리학자들의 시각에서 쓰인 것이 대부분이다. 조선 성리학자들은 고려말 원의 침략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 것은 왕을 시해하고 전횡을 저지른 무신 집권자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기록 속의 무신들은 무식하고 천박하고 탐욕스럽고 잔학무도한 반역자들이다. 하지만 <무인시대> 제작진은 무인들이 천출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출중한 용력과 대담함으로 천하를 쟁패한 난세의 영웅이라고 주장한다. 나약하고 부패했던 문벌귀족사회의 모순을 타파하고 고려의 자주성과 민중들의 자각을 일깨운 시대정신의 대변자라는 것이다.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이들의 활약을 되살려냄으로써 우리 역사 속에 감춰져 있던 영웅들을 복원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무신정변은 80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현대사에서 재현되었던 5·16 군사쿠데타를 연상시킨다. 그동안 무신정변이 드라마의 금기 소재였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때문에 <무인시대>가 시작되자마자 무력으로 정권을 창출했던 군사쿠데타를 미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무인시대>는 무신들의 반란에 그리 큰 대의명분을 부과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처우에 불만을 품고 분에 못 이겨 거사를 벌인 반역도당으로 비치기도 한다. 제작진은 무신들이 개인적 욕망 때문에 몰락해가는 과정을 통해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역사적 진리를 보여줄 것이라고도 밝혔다. 하지만 역사 드라마의 특성상 시청자들을 매혹시키기 위해서는 주인공들의 영웅화가 불가피할 것이고 무신 영웅들의 폭력성은 세상을 이끌어나가는 강인한 힘과 권위의 상징으로 숭배될 것이다.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역사도 ‘창조’


사진/ 안방극장 폭력 영웅 만들기의 원조! ‘싸나이들’의 결투장면으로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는 SBS의 <야인시대>.


이러한 폭력의 미화는 SBS의 <야인시대>가 원조다. <야인시대>는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싸나이들’의 결투 장면으로 인기를 유지해왔다. 주인공들이 바뀐 2부에서 ‘정치 드라마’의 색깔이 강해지면서 시청률이 하락하자 일대일 싸움 장면을 더 많이 만들어내어 시청률을 회복하자는 ‘모의’가 있을 정도다.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일어나지도 않았던 역사를 창조해서라도 시라소니와 김두한의 결투 장면을 만들겠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야인시대> 2부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등장했다. 반공주의에 기반을 둔 김두한 영웅 만들기가 그것이다. 해방 뒤 공산주의자인 친구 정진영의 영향으로 좌익 계열인 ‘조선청년전위대’의 대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김두한은 아버지 김좌진 장군이 공산당원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변신한다. 그는 친구인 정진영을 살해하고 남로당 당수인 박헌영에게 테러를 가하는 등 극우 반공세력의 일원으로 갖가지 폭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김두한의 행적에 대해서는 비판적 접근이 필요함에도 드라마는 김두한 영웅 만들기에만 골몰한 나머지 시대착오적인 반공주의를 설파하는 장이 되어버렸다. 이환경 작가는 “해방 이후 이데올로기의 극한 대립 속에서 야기됐던 비극적인 상황을 여과 없이 그려내겠다”고 했지만 이미 ‘국민적 영웅’으로 그려지는 김두한에 대항하는 좌파 세력은 영락없는 ‘악의 축’으로 전락하고 만다. 김두한이 아버지가 공산당원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보여준 신파조의 장중한 분위기와 공산주의 세력이 김두한 암살음모를 꾸미는 장면을 부각한 것이 그 예가 될 것이다. 김두한의 폭력이 정당성을 획득하는 극적 장치인 셈이다.

<무인시대>와 <야인시대>는 모두 폭력으로 상대세력을 압도하는 영웅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디 드라마뿐이랴. 무력을 가진 자들, 싸움에 출중한 능력이 있는 자들은 언제나 영웅이었다. 하다못해 우리의 생활에서조차 몸으로 상대방을 이길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경외심을 갖게 되지 않던가. <무인시대>를 본 한 시청자는 “칼 든 사람 앞에서는 까불면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위험한 깨달음이다. 돌이켜보면 총과 칼의 논리 앞에서 힘없이 굴복해야 했던 우리의 우울한 복종의 역사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가.

권력자의 힘에 중독되란 말인가


사진/ SBS의 <야인시대>.


이렇게 보이지 않게 세를 얻는 파시즘이 오늘날 개그우먼 이경실 사건과 같은 가정폭력의 희생자들을 양산하게 됐다고 보는 게 지나친 오류만은 아닐 것이다. 가정폭력은 일부 삐뚤어진 남자들의 그릇된 행동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가 휘두르는 폭력을 당연시하는 사회풍토의 산물이며 폭력이 내재화된 문화의 산물이라는 주장은 새로운 게 아니다.

폭력의 권위, 힘의 권위에 기댄 ‘역사’ 드라마 <무인시대>와 <야인시대>는 각각 20%대와 3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 순위 10위 안에 꾸준히 진입하는 인기를 얻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권위주의적 상상력’에 중독돼 그 자장 안에 머물고 있는 건 아닐까.

피소현/ <스카이라이프> 기자 plav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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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집일: 2003-3-28 4:46 pm (변경사항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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