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가스누출 사고로 숨진 인도 어린이. 사고 당일에만 3천명, 이후에도 약 2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GAMMA)
비극이 발생한 뒤 사람들의 감정은 언제나 분노에서 동정으로, 그리고 망각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엄청난 유독가스가 보팔의 유니온 카바이드사 근방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삶에 흘러든 지 18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이 ‘법칙’에 따라 참사를 잊었다. 하지만 그날의 희생자들에게 그날의 사고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1984년 12월3일 인도 보팔에서 세계 최악의 산업재해가 발생했다. 그날 새벽, 유니온 카바이드사 살충제 공장에서 2시간 동안 약 36t의 메틸이소시안산염과 수소 시안화물, 그리고 다른 유독가스들이 새어나왔다. 사고 당일에만 3천명이 사망했고 이후에도 약 2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고 당시 가스에 누출된 부모에게서 태어난 어린이들을 포함해 약 15만명의 사람들이 사고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한달 평균 30명이 사고와 관련한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또한 주변지역 생태계도 크게 훼손되었다.
해달 한 마리보다 못한 보상금
다량의 유독가스가 인구 밀집지역에 저장되었다는 것부터가 문제인데다 그것의 관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참사를 불러온 원인이었다. 화씨 37도 미만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냉각장치는 하루에 40달러의 경비를 아끼기 위해 늘 꺼져 있었다. 또한 이전에 신경가스 누출사고가 있었음에도 안전장치와 경보장치도 꺼져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가스 저장탱크는 용량 초과상태였다.
사고 직후, 당시 유니온 카바이드사의 회장인 워런 앤더슨을 상대로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이 제기되었다. 그 중 민사소송은 사고 발생 5년 뒤인 1989년에야 겨우 4억7천만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것은 아무런 인명피해도 없었던, 1989년 엔론사의 알래스카 기름 유출사고 당시 지불된 50억달러와 비교하면 터무니없는 액수다. 50억달러는 사고로 피해를 입은 해달 한 마리당 940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러나 보팔 사고에서 암, 결핵, 선천적 기형, 생식불능, 안구질환 등으로 평생을 고통받아야 하는 피해자 개개인에게 돌아간 돈은 겨우 500달러가량이었다.
당시 유출된 가스의 화학적 구성성분이나 메틸이소시안산염의 작용 및 영향에 대한 자체 의학연구 결과를 밝히지 않아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게 한 유니온 카바이드는 오늘날까지도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고 이후 회사쪽은 독성 폐기물을 공장부지에 아무렇게나 방치한 채 공장을 폐쇄했고 폐기물에서 흘러나온 독성물질은 지하수로 스며들고 있다. 현재 공장 주변 주민들은 수은과 기타 중금속이 함유된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으며 중금속들은 모유에까지 나타나는 실정이다.
이에 사고 희생자들은 2001년 2월 유니온 카바이드사를 인수한 다우 케미컬에 공장 내부와 주변에서 지하수와 토양을 오염시키는 폐기물들을 청소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다우 케미컬의 언론담당관 존 무세르는, 모든 법적 채무는 인도 정부와 유니온 카바이드사가 4억7천만달러의 보상금에 협상했을 때 해결되었으며 공장부지의 청소 또한 그 보상금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홍보이사 캐티 헌트는 “500달러면 인도인들에게 남아돌 만큼 충분한 돈이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과실치사 형사소송도 힘들어
사진/ 사고 이후 폐쇄된 유니언 카바이드 공장(왼쪽). 지금도 독성 물질이 지하수로 스며들고 있다. 회사의 무책임한 조처에 항의하는 시민단체 활동가. (SYGMA)
미국 내 그린피스 활동가들은 “만약 보팔 사고가 미국에서 일어났더라면 다우 케미컬은 이미 책임을 졌을 것이다. 미국 법률은 소유권 변화를 이유로 오염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주지 않는다. 미국 바깥에서 더 낮은 기준이 적용되는 것은 비양심적인 일이다”라고 말했으며 인도 활동가들도 선진국들의 이중기준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
한편 워런 앤더슨을 상대로 한 형사소송은 그가 끝까지 인도 법원의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음으로써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에게 부과된 혐의는 과실치사로 만약 그가 인도로 송환되어 혐의를 인정받는다면 최소한 10년은 감옥에서 보내야 한다. 그러나 어이없게 인도 중앙수사국은 지난 9월, 앤더슨의 혐의를 과실치사에서 단순과실로 경감해 달라는 탄원서를 인도대법원에 제출했다. 미국과 인도 사이에 맺어진 범인인도협정은 과실죄에는 적용되지 않으므로 만약 단순과실로 혐의가 경감된다면 앤더슨은 인도 법정에 서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희생자들의 대표인 변호사들은 정부가 워싱턴의 압력과 외국 투자자 감소에 대한 우려 때문에 혐의를 경감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과실죄로 혐의를 경감하려는 인도 정부의 시도를 무시하고 앤더슨이 가스참사에 대해 살인죄를 적용받아야 한다고 판결했으나 아직 앤더슨은 인도로 송환되지 않았다.
보팔 참사는 다국적기업이 운영하는 위험산업 내지 공해산업의 해외진출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들은 1970년대 이후 환경적으로 유해한 산업에 대한 법적 규제를 강화하고 엄격한 안전관리시설과 공해방지시설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자 다국적기업들은 이러한 규제를 피해 아시아·아프리카 등 공해 관련 법규가 느슨한 지역으로 진출했다. 따라서 인도에도 많은 다국적기업들이 들어왔고 그들이 설립한 공장들은 인도 자연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2001년 3월, 남인도의 코다이카날에 있는 유니레버의 온도계 공장에서 수은폐기물이 무단 폐기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7.4t이나 되는 수은함유 유리조각들이 학교 근처 공장부지에서 발견됐다. 처음에는 어떤 위험 폐기물도 공장에서 버린 적이 없다고 발뺌하던 회사쪽은 결국 2001년 6월 공장을 폐쇄함으로써 무단 폐기를 인정했다.
유니레버는 아무 안전 예방조치 없이 독성물질인 수은을 사용했고 그것의 유해함에 대해 근로자들에게 어떤 안내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니온 카바이드사가 그랬듯 근로자들에 대한 치료와 금전적 보상, 정화작업, 지역에 대한 사과 등의 요구를 묵살했다. 폐기물을 무단 투기했을 뿐 아니라 유니레버는 수은이 함유된 파손된 온도계를 지역 고물상들에게 판매하기도 했다. 적어도 30t의 유리 폐기물들이 1t당 약 25달러에 판매되었고, 폐기물에 수은이 함유된 사실을 몰랐던 업자들 중에는 그것을 어린이들을 위한 유리구슬을 만드는 데 사용한 사람도 있었다.
한편 인도는 선진국들에서 가장 선호되는 폐기물 투기지역이기도 하다. 인도 정부의 수입 데이터에 의하면 1999년에 5만9천t과 2000년에 6만1천t이 넘는 플라스틱 폐기물이 인도에 버려졌다. 수입품목 중에는 미국·네덜란드·일본·프랑스·영국 등에서 수출된 높은 독성을 함유한 플라스틱 폐기물도 포함되어 있다.
서구의 독극물이 밀려온다
지난 6월, 약 3만t의 세계무역센터 잔해가 미국에서 수입되어 남인도의 첸나이항에 도착하자 인도의 환경운동단체들은 노동자들이 그것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유해한 독소에 노출될 것에 우려를 표했다. 세계무역센터 잔해가 발암물질인 석면, 폴리염화비페닐, 디옥신, 푸란, 수은, 납, 그리고 다른 중금속들로 오염되었다는 주장은 미국에서도 있어왔다. 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선적물들이 오염되었는지에 대한 즉각적인 조사와, 잔해의 운반작업이 노동자들과 자연환경에 완전 무해하다는 것을 입증할 때까지 고철운반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잔해들의 일부는 한국에도 수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유니온카바이드사 공장부지에 놀이동산을 만들겠다는 어이없는 계획을 한때 발표하기도 한 마드야 프라데시 주정부는 최근 아직 피해자들에게 분배되지 않은 3천만달러의 보상금 중 약 1500달러를 지역으로 강물을 끌어오는 사업에 지출할 계획이라고 밝혀 물의를 빚었다. 중앙정부 역시 외국 투자자들의 환심을 사기에만 급급할 뿐 다국적기업의 환경오염 실태에는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아 제2, 제3의 보팔 참사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델리=우명주 전문위원 greeni@orgio.net